불청객과의 사투
언제 내가 동의를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구글이 보내준 지난 6개월 방문지 리스트 1위는 탕갈(Tangalwood), 바로 내 집이다. 2위인 회사는 넘보지 못할 압도적 1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6개월간 코로나로 인한 전국봉쇄와 위험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집에만 머물렀으니 당연한 결과다. 지금은 나의 안식처요 재택지요 유일하게 맨발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인 이집도 처음부터 내게 그런 편안함을 제공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나를 슬슬 피해 다니는 관리인도 눈꼽 만큼은 노력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반쯤 포기한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평안이 찾아왔다.
야간 경비의 무단 침입
이사를 하고 4개월쯤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잠을 청하며 침대에 누워 눈을 껌뻑이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엥? 옆집인가....? 옆집이라고 하기는 너무 가까운데’ 하는 순간, 뚜벅 뚜벅 명확한 군화 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잠 옷 위에 가운을 급히 걸치고 두 손에 골프채를 잡았다. 창문을 열어 소리를 지르고 관리인이 우리 집에 오는 소리를 듣고 방을 나서 보니 야간 경비가 거실에 떡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는 얼굴임을 인지한 순간, 불안에 황당함이 섞여 할 말이 없었다.
진실은 알 수 없으나 다음 날 나에게 고지된 진상은 야간 경비가 우리 집 주방 쪽 발코니의 불이 켜져 있어 끄기 위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말이 되지 않는 이유였기에 아파트 관리인 조차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라며 그를 해고했다. 나는 네팔이라는 주거 험지에서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못한 채 주인의 쏘리 케익과 기껏해야 내 집 계약서에 고용인에 의한 피해 보상 조항을 추가하며 일을 마무리했다.
욕실의 타일 붕괴
무단침입 사건이 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아침. 새벽 출근을 위하여 피곤한 몸을 샤워로 깨우고 있었던 순간 와장창창! 하는 천둥소리가 들린다. 샤워 커튼을 젖히자 욕실 한쪽 벽면 타일이 모두 무너져 변기의 일부를 깨트리고 스스로도 파편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더 아찔한 것은 샤워 이후에 내가 그곳에 서서 매일 화장을 한다는 것이다. 몸이 조금 덜 피곤해서 내가 샤워를 조금만 더 빨리 끝마쳤다면 나는 이미 떨어지는 타일을 온 몸으로 맞받았을 것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건 현장 사진을 찍어두고 일단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에 도착하여 관리인을 친절하게 데리고 가서 보여주니 그들도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연속된 2가지 사건의 발발에 네팔에서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날 타일이 깨끗하게 교체되었고 얼굴도 보지 못한 아파트 소유주의 사과 편지와 계약서상의 신체 피해 보상규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어떻게 두 가지 사건을 일주일 간격으로 겪으며 왜 이사 가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혀를 찬다. 내가 더 담대했다면 이사는 당연하고 피해보상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귀찮은 일들이 생기는 것 보다 스스로의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더구나 그 시기는 바쁜 내 업무가 내 모든 생활을 지배하고 있던 때이다. 생각할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몇 주나 지나서 무디어져 있었다. 말도 안 되고 옳지도 않은지 알지만 그것이 솔직한 이유이다. 물론 이후에 이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3-4곳의 집을 찾아다녔으나 이사의 귀찮음과 현 주택의 장점을 초월하는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
집 천장의 불청객
2~3개월 쯤의 평온한 집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집 천장에는 불청객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린 날 엄마가 쥐를 잡기위해 쥐덫을 놓았던 기억이 있지만 내가 쥐와 대면하거나 그것들의 존재를 느낀 적은 살면서 없었지 싶다. 그런데도 내 집 침실과 거실 천장을 뛰어다니는 그 소리가 쥐의 발톱 소리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합판으로 마감된 천장 위를 밤마다 때로는 낮부터 뛰어다니는 그들의 소리는 위생에 대한 불안 보다는 공포와 소름끼침이다. 한 마리의 쥐가 얼마나 빨리 무리를 형성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조속한 박멸을 요구했지만 관리인들은 쥐덫을 설치하여 수동적으로 그들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발자국 소리에 나의 불만은 늘어갔고 쥐약을 설치하고 몇 마리의 쥐를 덫으로 생포하고 나서야 조금 안정을 찾았다. 쥐덫을 끌고 천장에서 내 책장으로 떨어져 책을 모두 갉아 먹는 사태가 생기는가 하면 밤새도록 합판으로 만들어진 천장을 긁어대며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별다른 옵션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티던 나를 급기야 움직이게 한 것은 연속되는 두 가지 사건이었다.
사체와의 하룻밤
평온한 일요일 오후였다. 카트만두 답지 않은 깨끗한 공기로 넓은 베란다 창으로 작고 희미하게 나마 설산이 보였다. 여유 있는 주말 오후의 따뜻한 햇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갑자기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한국의 까맣고 작은 파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눈가는 빨갛고 몸은 회색이며 크기는 5배쯤 되는 파리다. 햇살이 좋은 베란다 창을 사정없이 부딪치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둔 곳도 없는데 어디서 파리가 들어왔을까 생각하면서도 행복한 오후의 한때를 망치고 싶지 않던 나는 살생보다는 무시를 택했다.
신경을 거스르는 강도를 넘어 여러 마리의 반복적이며 중복되는 소리에 책에서 눈을 떼고 바라본 창에는 이미 5~6마리 파리가 들러붙어 있었다. 이들이 어디서 들어왔단 말인가. 일단 신문지를 말아 움켜쥐고 사정없는 살생에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크기와 붉은 눈, 붉은 피에 소름이 돋았다. 일단 베란다 창에 붙어있던 파리들을 해결하고 이번에는 각종 창문이 제대로 닫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열린 곳은 단 한곳도 없었고 빈틈 사이라고 해도 그만한 파리가 들어올 만한 공간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모든 창에 5-6마리씩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무언가 이상한 일이 내 집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감지한 것은 그 순간이였다.
그날 저녁. 여유 있고 행복한 기분은 아무리 잡아도 1-2마리씩 다시 나타나는 파리로 망친지 오래였다. 설상가상으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하수구에서 나는 냄새다. 이곳에 살며 1년에 한 두번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서 불만을 제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침실에서 하수구 냄새가 난다.
순간 나의 뇌리를 스치는 엄청난 생각이 있었다. 수 일전 4개월여 만에 다시 천장에 나타난 쥐의 해결을 요청했었다. 쥐약보다는 쥐덫을 놓는 것이 네팔식이다. 지난번에도 안방 천장에서 쥐를 잡았는데 며칠 전 덫에 걸린 듯 한 소리가 났었다. 혹시 잡혀서 죽어 썩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오 마이 갓!
이미 늦은 밤이라 관리실에 아무도 없었음으로 나는 안방 문을 닫아두고 소파에서 그 밤을 보냈다. 다음날 관리실 사람을 불러 냄새와 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수구 냄새를 입증하기 위해 그를 내 안방으로 안내하는데 그는 이미 냄새 때문이라면 자신들도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한다. 나의 슬픔 예감대로 침실 천장에서 부패한 쥐를 발견했으며 꺼내지 못하여 오늘 전문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사체에서 나온 파리를 더 이상 잡을 수도 없어서 날라 다니는 파리를 견디고 있다. 그보다는 내 안방에 썩어가는 쥐와 파리 이후에 나타났을 구더기들을 상상하고 있는 내가 더 힘겹다.
그렇게 10여일이 흐르고 어느 날 기분 나쁜 반복적 소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이 부족하셨는지 이제는 거실까지 진출하려고 커튼 위쪽에 올라타고 똥을 누고 있는 쥐를 목격했다. 4층짜리 전체 건물이 떠나갈 듯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고 모든 관리인들이 내 집에 모여들어서 한바탕 소란 끝에 쥐를 잡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얗게 질려있는 나에게 쥐를 잡았음으로 들어가서 쉬라는 매니저의 말에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작 한 마리를 잡아놓고 이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 만사형통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멘탈이 이곳에서 지내는 2년여 동안 나를 얼마나 화나가 했던가. 이들은 쥐가 절대 홀로 살지 않으며 한 마리가 수십 마리가 되는데 몇 개월 밖에 걸리지 않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그 순간이였다. 귀차니즘과 다른 곳도 마찬 가지 일 것이라는 추측으로 안주하던 내가 한국 돌아가기 딱 1개월을 앞두고 이사를 결정한 것은. 한바탕 난리가 난 내 방에 관리인 없이 홀로 남겨지자마자 여행 가방을 내어 짐을 쌌고 가능한 한 가장 최근에 개장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마지막 장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장식한 집이지만 내내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바퀴벌레, 개미, 하수구 냄새, 벌레 등의 불쾌감이 번갈아 가면서 있었고 마지막은 쥐로 장식하긴 했지만 내가 이사 나가기에 아까운 장점도 많았다.
우선 다른 네팔 집보다 층고가 높고 가구가 적다. 거실은 동쪽으로 한 면 가득 베란다 문이 나있고 남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있어 햇살이 하루 종일 머문다. 베란다 문 앞에 넓은 테이블을 배치하고 아침저녁으로 감상하던 해돋이와 달맞이는 매일 매일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이 끝없이 펼쳐진 하늘이 좋았다.
모닝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태양을 한국 갈 때 까지 느끼고 싶었던 나의 소망은 이렇게 한 달 일찍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