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의 소중함
‘히말라야니 공기 좋고 물 좋고 건강은 좋아지겠네’ 네팔로 발령을 받은 나에게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했던 말이다. 당시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했더랬다. 히말라야 깊이 들어가면 어떤지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카트만두는 도시화로 인한 환경파괴가 심각하여 건강은 둘째 치고 생활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비포장 도로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노후 차량들이 내뱉는 배기가스, 쓰레기 더미의 이물질로 10분만 밖에 있어도 온 몸에 먼지가 그득하다. 집에 와서 가글을 하고 코를 씻으면 코 안이 시꺼멓다. 가로수의 나무들은 무겁게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이 환경인데도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안쓰럽고 대견하다.
흙으로 가득 차는 정수필터
상수도 역시 좋을 리 없다. 운동으로 수영을 하고 주에 며칠씩 반신욕을 하는 나에게는 쥐약 같은 곳이다. 한번은 어떤가 싶어 물을 받아본 적이 있다. 누리끼리한 욕조보다 더 누리끼리한 물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라앉아 있는 흙들은 모른 척 하기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카트만두에 있는 동안 수영이나 반신욕은 생각을 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난생 처음으로 샤워꼭지와 정수필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네팔에 거주하는 한국사람들은 한국을 오고갈 때 쌀, 회, 고기 등 먹을 것을 가득 가져온다고 한다. 내 가방은 항상 욕실과 주방용 수도꼭지와 교체 필터로 가득하다. 처음 샤워꼭지와 정수필터를 사용할 때의 당황스러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우선 찔찔거리던 샤워기의 물발이 시원해졌다. 굳이 정수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샤워기 교체의 이유가 충분했다. 다음으로 새하얗던 필터가 단 1회의 샤워로 누렇게 변해버렸다. 필터 상자에 표기된 안내에 의하면 한국에서는 6개월은 지나야 나오는 색이 단 1회 사용으로 가능한 것이다. 변해버린 필터와 더불어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가득히 들어찬 흙의 존재이다. 이런 물로 샤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우기시즌으로 분류할 수 있는 3-9월 사이에는 더욱 심각하다. 미세먼지처럼 공식적인 수치 발표가 있는 것은 아니나 내 몸의 변화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내 손톱에는 흙이 끼고 손톱 주변은 염색을 한 듯이 검게 물든다. 어린 시절에 흙장난을 하고 나면 그렇듯이 말이다. 이때가 되면 필터도 흙의 양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항공으로 지고 이고 온 필터를 하루마다 바꿀 수는 없는지라 이 시기가 되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손주먹을 쥐고 다닌다. 다행인 것은 보기에 더럽고 부끄러워도 영구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시 평범한 손으로 돌아온다. 좋은 점은 깨끗한 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것과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지 못했던 손톱 물기 버릇을 고친 것이다.
미원 또는 다시마를 섞은 듯 한 물 냄새
항상 냄새에 민감하긴 했다. 덕분으로 내가 찾지 않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가 그 중 하나이다. 각종 음식과 사람 냄새로 피곤하다. 우리 할머니는 이런 나에게 항상 ‘저년의 코는...’ 라며 혀를 차셨더랬다. 이런 나이기에 지인들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나는 우기의 수돗물 냄새가 아주 힘들다. 특히 따뜻한 물이 심한데 미원을 물에 탔다고 해야 하나 다시마를 섞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 냄새가 난다. 샤워를 할 때 아무리 샴푸를 하고 비누를 발라도 미원 섞인 물로 샤워를 하니 몸은 그렇다 치고 기분이 깨끗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국에 도착하면 목욕탕으로 직행한다. 깨끗한 냄새 없는 물, 어쩌면 내가 익숙해서 맡지 못하는 냄새만 있는 물에서 온 몸을 박박 문질러 그 동안 묵을 떼를 빼고 나서야 한국 일정을 시작한다.
모임으로 간간히 만나는 지인들에게 수도 필터를 소개했다. 처음에 그들은 우리 집의 수도 상태가 불량한 것이며 자신들은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수도 필터를 사용하면 곧 연락이 온다. 이런 물에서 샤워하고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왜 좋은 것을 나만 알았느냐고. 그들의 반응이 나와 같아서 그리고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로 웃게 된다. 한편, 필터를 사용하기 시작하신 어느 분의 전언에 의하면 오염 수치는 수도꼭지 물이나 필터 물이나 동일하다고 하신다. 그래도 나의 필터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정수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흙물만 아니면 감지덕지다.
한국 이였으면 머리로는 알아도 절감하지 못했을 깨끗한 물의 소중함을 나는 네팔에 와서 절절하게 느낀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환경에 감사하고 이곳에도 조만간 깨끗한 물이 평범한 일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