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생존기 12화.

네팔에서 일하기 (1)

by 브랜디Cake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정기

12 (4).jpg

네팔 발령을 받고 입국 전후로 참 많은 책을 읽었다. 대부분의 책들은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네팔에 와서 히말라야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위안을 얻고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의 정기’를 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시간을 내어 등반을 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전망대에 올라 그 위용만이라도 느끼려 애쓴다. 사람들의 이런 열망은 히말라야가 그 모습을 보도록 허락한 사람은 많지 않으며 그런 사람은 앞으로 만사형통한다는 말까지 하게 한다. 내가 보기에는 날씨가 좋으면 보이고 나쁘면 보이지 않는 단순 자연현상인데도 말이다.


귀국을 100여일 앞둔 지금 ‘히말라야의 정기’라는 말을 떠올리며 지난 2년간을 돌아본다. 내게는 내 인생의 2년을 장식한 이곳이 그저 아름답고 따뜻하며 생명 넘치는 곳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칭찬 일색의 책들을 마주하며 나만이 이곳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봐 초초했었다. 미숙한 나의 지난 인생은 옳지 못했던 적이 많았고 삶의 변화를 찾아 나선 이 길에서 조차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물론 나도 히말라야의 숨 막히는 경관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시선을 빼앗기고 멍하니 바라본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와 마주했을 때,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마차푸추레가 아침 태양에 모습을 드러낼 때 터져 나온 탄성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며 있었다. 뿐만 아니라 트래킹 시즌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시내에서 전망되는 설산의 전경은 언제 봐도 물리지 않는 행복한 경험이다. 과연 히말라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저 아름답게만 묘사한 책들에 온전하게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이곳에서 생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회사 앞을 찾아와 자신만을 위한 특혜와 배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국민소득 천달러 네팔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의 한국 행정서비스를 만족시키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며 밤잠을 설쳐야 했다. 더불어 평소에는 상호주의를 외치다가 불리해지면 자신들의 열악함을 내세우는 황당함을 견디어야 했다.


언젠가 알게 된 네팔인의 아내 되시는 한국분이 우리 사무실 업무를 몇 달 도와주신 적이 있다. ‘다들 네팔이 좋다는데 나는 왜 정이 안생길까요?’ 그녀가 우리 사무실을 떠나며 했던 말이 그나마 나를 위로했다.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생각해 봤어요. 아마도 네팔 시스템에서 한국이 원하는 일을 하고 계셔서 인듯해요’

그래 맞다. 내가 너무 방어적이어서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다들 좋다는 네팔에 부적응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여 이곳에 온 사람과 상황에 내던져진 나는 다른 것이다. 비즈니스라는 환경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도 힘이 드는데 이곳은 오죽하겠는가. 쉽게 익숙해지지 않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익숙해지면 나는 한국 회사에 다닐 수 없는 것 일거다. 그녀 덕분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수는 있었으나 스멀스멀 뇌리 저편을 기어다니는 불편함은 여전하다.


이중잣대

어느 나라나 내국인에 대한 우대가 있기 마련이다. 첫 출장으로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를 가고자 했을 때 네팔인 직원과 나의 항공료가 다르고 내 것이 정확히 2배나 더 많았을 때도 나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라기 보다 내국인에 대한 우대로 인식했다. 1년 반 넘게 다니던 과일 가게에서 킬로그램당 90 루피에 사먹던 수박을 현지직원이 킬로그램당 60루피에 당연하게 사올 때도 약간의 억울함이 있기는 했어도 받아들였다. 내가 돈이 많아서 몇 백 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현지인이 누리지 못하는 편리를 자의든 타의든 누리고 있음으로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싶었다.


그런 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있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3개월 정도의 봉쇄령(Lockdown)이 완화 되면서 사무실 업무가 재개되었다. 업무상 많은 네팔인이 회사를 방문한다. 직원의 안전이 걱정이기는해도 방문하는 내방객의 생계가 걸린 일로 미룰 수도 없다. 어렵사리 방호복을 구해 입고 그들을 맞았다. 입자마자 땀이 나기 시작하는 방호복은 6월 더위와 좁은 사무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으로 내방객이나 직원들이나 모두 힘든 나날이었다. 안타깝게도 다녀간 사람 중에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우리는 사무실을 2주간 폐쇄 후 소독에 들어가야 했다. 한국은 확진자가 다녀가면 국가에서 소독을 해준다고 하지만 여기는 네팔이다. 소독업체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이 소식이 건물에 위치한 다른 사무소에도 퍼졌을 테고 불만이 나왔다. 직원을 통해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는 했으나 불만이 지속되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직원이 말을 건넨다. 그들의 사무실도 소독을 같이 해달라는 의도라고. 각자의 사무실까지는 어렵지만 방문자가 지나갔을 계단 등 동선에 대해 소독을 병행하는 것으로 불만을 일단락 지었다.


한 달여 지난 어느 날 밤 직원이 급하게 연락이 왔다. 불만을 제기했던 사무실 근무 직원이 확진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건물 폐쇄나 방역 일정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무도 건물을 폐쇄하지 않으며 누구도 소독 따위를 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본인들끼리는 그래도 괜찮다. 그러나 우리 사무실은 외국인이라는 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최대치를 얻어내려고 항상 불만하고 찾아오곤 한다.


체면이라는 단어

처음 네팔에서 업무를 시작하면서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임으로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생각하기를 체면을 중시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나 싶었다. 뿌리 깊은 양반 문화를 가진 우리나라도 체면을 중시한 나머지 여러 단점이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서양 사람들 또한 상대의 체면을 망가뜨려서 좋을 리 만무하다.


네팔에서 2년 동안 그들과 업무를 하면서 나의 결론은 이들은 체면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지 비난받기 싫을 뿐이다. 특히 남 앞에서 말이다.

업무를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수차례 회의를 통해 문제없음을 확인 받은 일이 몇 달이 지나도 진전이 없다. 어느 날 회의에서 약속된 기한내의 업무 추진을 강하게 촉구하고 나선 나의 태도는 상대편에게 동료 앞에서 비난 받는 수치스러운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그는 업무를 방관하는 것으로 복수 아닌 복수를 했고 한동안 애를 먹었다.


언론에는 종종 확인이 안 된 기사들이 난무하고 이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에 무감각하다. 업무와 관련된 수차례의 다양한 오보에 대하여 신문사에 항의성 글을 보내기도 하고 유선으로 항의하기도 여러 차례였으나 항상 반응은 동일했다. 무반응이거나 모르쇠로 일관. 언론인이 문제인지 그 언론에 시시때때로 구미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이 문제인지 아직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우리와 업무를 하는 사업 파트너는 종종 언론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부정확한 정보를 인터뷰 형식으로 내보내거나 심지어 사실과 반대되는 내용을 내 보낼 때도 있다. 이후에 우리의 전화를 회피하거나 인터뷰 사실을 전면 부인하거나 짜증을 내기 일쑤다. 그렇다 짜증이다. 지독한 한국인 나는 그럼 그 신문사에 같이 항의서를 보내거나 찾아가거나 법적 소송을 제기하자고 제안하는데... 그는 일관한다. 하고 싶으면 혼자 하라고 말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체면이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의미한다. 나의 체면은 나의 말과 행동이 신뢰받음으로서 얻어지는 것이지 단지 그 상황을 모면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네팔인들은 단지 비난받기를 싫어할 뿐이지 자신의 체면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면 체면이라는 단어가 없거나 그 의미가 우리와는 다름이 분명하다.


한국말에 능숙한 현지 직원에게 체면이라는 단어가 네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통역과 번역 업무를 한다. 나조차도 기억 저편에서 가져와야 하는 단어를 알고 있어서 때때로 나를 놀라게 하는 그녀는 체면이 뭐냐고 되물었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도 한참을 생각하다가 알려준다. 마치 미안하다는 말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바로 답을 주지 못해서 놀라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있기는 있어요. 잠시만요’

‘IJJAT(잇젖) 이예요. 내가 나쁜 일을 하면 내 가족의 잇젖을 잃었다고 하고 내가 좋은 일을 하면 내 가족의 잊젖을 세웠다고 해요, 잘 쓰지 않아서 한참 생각했어요’

내 생각으로는 한국어에 체면이라기 보다는 가문의 명예에 가까운 듯 하다.



이전 11화네팔 생존기 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