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생존기 13화

네팔에서 일하기 (2)

by 브랜디Cake

기계보다 사람의 힘으로


우리 집을 포함해 주변 건물이 모두 2-3층의 고만고만한 높이다. 덕분에 집안에서도 넓은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이 이동하는 것을 감상하거나 먼지가 덜한 날에는 저 만치 산들을 구경하기가 좋다. 오래된 동네라 주변에 나무들도 많아서 비둘기, 까마귀, 참새는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색의 새들이 아침이면 목청을 높인다. 그렇게 조용한 아침에 하루를 준비하는 것이 즐거워 이 집을 떠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집 앞과 옆, 그리고 뒤까지 공사를 한다. 듣자하니 3개 모두 호텔이란다. 관광수입에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작년부터 신규 호텔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가 닥쳐 대형 호텔들까지 휴업을 선택했지만 하던 공사를 멈출 수는 없는가 보다. 덕분에 나는 요즘 새소리가 아닌 공사현장의 크고 작은 소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소음 보다 불편한 것은 공사장과의 거리인데 거실에서 인부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가깝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넓은 창은 이제 커튼이 항상 드리워져있다.


그런데 이들이 공사하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신기한 것이 있다. 보통 우리네 공사현장에는 사람도 있지만 기계들이 더 많다. 이곳은 사람과 철근, 시멘트 같은 재료만 많다. 기계는 보이지가 않는다. 드라이버가 아닌 망치로 두드리고 사람이 등에 지고 옮기고 있다. 호모 하빌리언가 기초적인 도구만으로 인류 문명을 이룩했던 모습을 목격하는 듯하다. 추후 누군가의 전언에 의하면 기계를 당연히 사용하고 있으나 빈도수가 낮고 저렴한 비용을 위하여 주로 밤에 사용하다고 한다.


한번은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를 자랑하는 대규모 짐들을 옮길 일이 있었다. 리프트 차가 올 줄 알았더니 사람들만 20여명이 온 것이다. 무게는 그렇다 치더라도 워낙에 화물의 크기가 큰지라 작업자의 안전도 화물의 파손도 걱정이라 리프트차로 이동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으레 그렇듯 네팔인 특유의 고개 끄덕임으로 ‘OK! No Problem, Don’t worry’하더니 또 사람들이 끙끙대고 있다. 순간 나는 리프트 차가 이곳에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없는 것을 가져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저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짐의 균형이 무너져 한 사람이 깔릴 듯 한 아찔한 순간이 벌어졌다. 안절부절 못하는 내 시선으로 리프트 차가 들어온다. 엥? 리프트 차의 도움으로 작업자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상식을 위협받는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업자만 구하고 리프트 차가 가버린다. 그리고 또 다시 인간과 거대 화물의 사투.


진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소이 이 멘붕사건에 대한 지인의 해석은 이렇다. 기계가 있지만 기계보다 본인들 손이 편하다고 한다. 기계를 잘 믿지 않음이기도 하지만 기계가 몇 대 안되어 고장 나면 골치 아픈 것이기도 하단다. 기계가 몇 대 안되니 써본 사람이 드물고 써본 사람이 드무니 기계를 쓰는 것이 불편할 것이고 기계사용이 서투니 고장을 자꾸 내는 악순환인 듯하다.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AI시대에 위험은 기계에게 맡김이 어떤가 싶다.


여기는 삼손들이 사는 동네


히말라야에서 사는 사람들은 힘이 세다. 사람별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별 국민 근력의 차이 비교표도 없으니 ‘힘이 세 보인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남자이기는 해도 체격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작은데 25kg이 넘는 내 여행 가방을 거뜬히 들고 내방이 있는 3층까지 오른다. 한 손에 한 가방이다. 즉, 2개의 여행 가방을 한 손에 하나씩 거의 50kg는 육박하는 가방들이다. 아마 손이 3개였으면 3개를 모두 들고 갈 생각이리라.


우리 사무실은 5층에 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는 없다. A4박스 같은 사무용품은 물론 생수 같은 편의 용품까지 모두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들고 5층 까지 올라간다. 보통은 물품을 담당하는 우리 사무실 직원의 지시에 따라 배달 온 해당 업체 담당자가 가지고 올라오기는 하지만 어떤 업체는 5층까지 배달하는 것은 본인들 일이 아니라고 1층에 두고 가버린다. 그러면 물품 담당 직원과 경비 아저씨가 같이 짐을 지고 5층을 오르내린다. 1L생수통이 9개씩 포장된 팩을 2~3개씩 들고 또는 어깨가 매고 거뜬하게 계단을 오른다. 한국의 보통 사무실 같았으면 이후에 근무는 어렵고 모두 간식을 시켜먹고 집에 가야하는 상황인데, 여기서는 평범하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1600고도의 히말라야 산악지역에서 어려서부터 뛰고 놀아서 심폐량이나 근육량이 다르다고 치더라도 놀랍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힘의 소유자들이 청소를 하거나 걸레를 빨 때는 얼마나 힘이 없는지 차라리 내가 하자 싶어 중단시키는 일이 비일 비재하다.


나의 일과 너의 일

외부 장소를 임대하여 업무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행동파인 나는 다른 직원들이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책상을 옮기기 시작했고 나로 인하여 현지인 동료도 마지못해 동참해야 했다. 주변에는 경찰들과 해당 기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30여명이 있었다. 행사로 인해 차려입은 빼딱 구두 소리가 높은 천장을 가르고 책상을 끄는 둔탁한 소음이 공중에 증폭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두 사람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제안하거나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25kg 여행 가방을 한 손으로 번쩍 번쩍 들어 올리는 이들이고 보니 나는 적지 않게 놀란다.


그 다음날. 어제 당부하고 갔음에도 책상과 집기류로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상황. 한 달 전부터 행사장 배치도를 전달하며 설명하고 부탁하고 그들은 또 ‘No problem’을 외치지 않았던가.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재미있는 것은 ‘No problem’을 외치던 그곳 담당자는 가만히 서서 흥미롭게 나를 지켜볼 뿐이라는 사실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제안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내 입으로 약속한 내 업무의 한부분임에도 그는 가만히 서서 지켜볼 뿐이다.


이 두 사건에 대해 현지인 직원과 말할 기회가 있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건 아니지만 도와준다고 제안할 수는 있는 것 아닌가요?’ ‘여기서는 자기일은 자기가 하고 맡긴 일은 맡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남자라고 여자 도와주고 그런 건 없어요.’ 틀린 말은 아니라 대답을 찾지 못한다.


외국인이라서 여자라서 특별대우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내 일이고 남의 일이고를 떠나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있기 불편한 마음이 인간 본성이 아니던가. 한국에서는 사라져버린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이곳에 정주한 사람들과 달리 나는 이런 면에서 한국이 더 따뜻하다. 이중 주차된 차를 밀지 못해 긍긍 대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길에 누군가가 손을 보태주었고 분리수거 쓰레기가 너무 많아 흘리며 걸으면 뒤에 오는 사람이 주워서 같이 와주던 그런 경험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에 나는 저기에 사는 것이리라. 각자가 느끼는 따뜻함의 요소와 정도는 다른 모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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