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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brant Jul 19. 2021

29, 해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29에 수능을 봤습니다. 19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스물아홉이면 부모님처럼 직업도 있고, 결혼도 했을 줄 알았습니다. 서른이 넘은 사촌 형이 결혼 안 한다고 잔소리를 듣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자라서인지도 모릅니다. 무튼 저도 상상 못 한 일이기도 했고, 수능 이후 대학에 합격을 한다고 해도 30대에 다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수능시험 전날, 예비 소집을 위해 근처 중학교에 갔습니다. 수험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서있는데, 저 멀리에 아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설마설마했는데, 한 칸씩 앞으로 가서 제 순서가 되어 확인해보니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였습니다. 중학교 교사가 된 친구는 수험생인 제게 수험표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수험표를 나누어주면서, 제 앞에 있던 학생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시험 잘 보세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 별 얘기는 아니었는데, 친구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몇 달 동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시험을 준비하다 보니, 누구에게도 그런 힘이 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제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오래도록 숨겨왔던 사실을 터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편해진 덕분인지 짧은 시험 준비 기간에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속 시원히 얘기하고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위축되기만 했던 20대와는 다른 30대를 살아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일단 용기를 내서 대학교 입학식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용기를 내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용기를 내보니, 두 번째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다들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창피했지만 용기를 내어 함께 입학한 동생들처럼 선배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장기자랑으로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또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하여, 운동을 함께 하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조금씩 넓혀갔습니다.


 나이가 8~9살이 많은 후배 형이 불편했을 텐데, 먼저 다가가니 선배였던 동생들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수업 때 필요한 교재를 물려주기도 하고, 수강신청에서 피해야 할 교수님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습니다. 교수님들도 저를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현실적인 고민들에 귀 기울여 주셨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게 추천해주셨습니다. 또 좋은 기회를 알려주셔서 미국에서 연수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10대의 저는 소극적인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알아주는 까불이였고, 중고등학교 때는 반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대 전부를 바쳤던 시험에 떨어지다 보니, 저는 해가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무엇에 도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러면서 의도치 않게 무언가를 숨기게 되었고, 혼자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더 힘든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 소극적인 태도가 상황을 얼마나 더 부정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손만 뻗으면 저를 도와줄 사람들이 제 주변에 그렇게나 많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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