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운이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 19의 존재도 모르던 때였으니까요. 덕분에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아내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결혼은 처음이라(ㅋㅋㅋ), 결혼 준비를 시작했던 2019년 여름만 하더라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퇴근 후, 가장 최근에 결혼을 한 친구와 만나 결혼 준비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감자탕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친구의 이야기 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결혼 과정에서 신부가 하자는 대로 하라는 것(정확히는 남편인 너의 의견은 반영될 자리가 없으니 조용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신혼여행에 돈을 아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신혼여행 일정 중 일부에서 비용을 생각하느라 저렴한 숙소를 선택했었는데, 그것이 엄청 후회가 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그런 제가 듣기에도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남자인 저는 제 친구와 마찬가지로 결혼식에 대한 특별한 로망 같은 것은 없었지만, 신부는 다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인데, 허름한 숙소에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위해, 친구의 이야기를 따라 좋은 숙소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에게 배운 대로 5 스타 호텔 위주로 골랐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카나리아 제도의 섬 중 하나인 푸에르테 벤투라 (윤식당에 나왔던 테네리페 옆에 있는 섬) 유일의 5 스타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봤던 대로 해변가 바로 옆에 있는 경치가 끝내주는 호텔이었습니다. 체크인을 하는데, 크리스마스 디너파티가 있는데 참석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로맨틱한 분위기일 것 같아서 저희는 아무것도 모른 채, "Sure!"라고 대답했습니다.
12월이지만, 20도가 넘는 여름 날씨여서 편안한 복장이었던 우리 부부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완전히 드레스업을 한 상태였습니다. 여자들은 하이힐과 명품가방, 그리고 보석들로 휘감고 있었고, 남자들은 덥지도 않은지 검은색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인도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릴 때만 해도 한국인 부부들도, 일본인 부부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그런데 저희가 가장 놀랐던 것은 다른 손님들의 복장 때문도, 그리고 인종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리조트에서 보낸 5일 동안 저희는 식당에서도, 수영장에서도, 그리고 바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들밖에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식당에서는 조용히 식사를 하셨고, 수영장에서는 아무도 수영을 하지 않고 태닝을 하며 책을 읽고 계셨습니다. 가장 업이 된 순간은 식사 후 바에서 축구경기 중계를 보는 순간에 보였던 짧은 환호 정도였습니다. 잠깐 얘기를 나누어보기도 했는데, 그분들은 대부분 추운 겨울이 싫어서 영국이나 독일에서 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저희가 그렇게 궁금해했던 젊은 커플들의 행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돌고래 투어 셔틀에서였습니다. 셔틀은 섬 내의 리조트들을 돌고 돌아 바닷가에 도착했는데, 조금 더 합리적인 가격을 가진 3 스타 내지, 4 스타 호텔 앞에 설 때면, 젊은 커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외국의 젊은 친구들이 합리적인 경제생활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알고 보면 외국과 우리의 휴가 문화 자체에 큰 차이가 있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방문했던 푸에르테 벤투라의 숙소는 최소 일주일 이상 투숙하는 경우에만 예약이 되는 곳이 많았습니다. 휴가기간이 워낙 길다 보니, 2주에서 한 달에 가까운 긴 시간 내내 비싼 호텔에서 보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예약했던 숙소도 사실 5일 예약은 불가능한 곳이었는데, 신혼여행이라고 이메일을 보냈더니 개별 링크를 보내주면서 예약을 받아주었습니다. 신혼여행이 아닌 다른 커플들은 저처럼 이메일까지 보내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테니, 가격 부담이 덜한 숙소에서야 다른 젊은 커플들을 만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곳에서부터 저희 부부의 경제생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호텔에서 만났던 영국과 독일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윤택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현재를 조금 희생할지, 아니면 한 번뿐인 신혼여행인데 호텔에 돈을 아끼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었던 친구의 말처럼, 조금 무리하더라도 젊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누려보는 삶을 선택할지. 그런데, 유럽, 아니 푸에르테 벤투라의 5 스타는 저희에게는 맞지 않는 옷인 것 같았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