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여자는 고민이 많다(4)
29살 여자는 고민이 많다 (3) ( https://brunch.co.kr/@branu/128 )에 이어서
어릴 적 내가 본 어른들은 겁나는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들은 벌레도 잘 잡고 주사도 잘 맞았으며 뭐든 척척해냈다. 난 그들처럼 빨리 어른이 되어 다 잘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진짜 겁이 없었던 건 어린 시절의 나였다. 면도날을 맨손으로 잡았다 손에 흉터가 생겼다던가 빙판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다 넘어져 응급실에 실려갔다던가 잘 모르기에, 잃을 것이 없기에 겁이 없었다.
이젠 보드를 더 잘 타려면 수천수만 번의 엉덩방아를 찧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연기가 해보고 싶었지만 천만 관객 배우가 될 확률은 0.1%도 안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도전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내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들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았기에,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하는 선택들이기에 겁이 많아졌고 이직도 겁내던 것 중 하나였다.
타 업계 이직의 위험요소 2가지
타 업계로의 이직은 아주 겁이 나는 선택이다. 그냥 동종업계에서 이직을 해도 위험요소가 많은데 타 업계로 이직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위험요소가 더 있었다.
+ 위험요소
1) 업계 상황 1도 모름
2) 아는 사람 1도 없음
보통 이직을 한 후 1-2개월은 바보로 산다. 그 회사의 시스템이나 문화를 모르기에 전화도 잘못 걸고 품의 결재라인을 다르게 올려 혼나기도 한다. 거기다 다른 업계로 간다면? 그럼 이건 바보 정도가 아니라 아주 똥멍충이로 산다고 보면 된다. 똥멍충이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걸 물어보고 당연하게 처리해야 하는 것을 처리하지 못한다.
이 똥멍충이 기간은 최소 3개월이지만 그 회사를 퇴직하는 그날까지도 똥멍충이로 살 수도 있다. (회사에서의 첫인상은 아주 중요하다. 웬만하면 평생 감)
동종업계면 다리 하나만 건너도 아는 사람이 꽤 된다. 내 핸드폰 연락처에 있는 유통업계 사람이 50명 정도라 할 때 이 사람들을 건너다 보면 온라인 유통이건 오프라인 유통이건 다 이어져 있었다. 간혹 타사 동향이 궁금해질 때 단톡방에 질문 하나를 띄우고 기다리면 그 방 사람들이 10분도 안돼서 비둘기처럼 정보를 물어와주곤 했다. 인맥은 곧 정보고, 정보는 곧 실력이었다.
그런데 업종을 바꾸게 되면 물어볼 사람이 없다. 정보력이 딸리고 그럼 문서 작성 능력이 이전 회사 때에 비해 부족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뒤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경력직이라고 왔네 역시 경력직도 별거 없어 라며 욕을 한 바가지하고 당신은 빠른 속도로 잘못 뽑은 사람으로 찍힐 수 있다.
내가 말한 위험 요소들이 좀 극단적이고 부정적인 상상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저런 상황이 전혀 연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화목한 분위기, 모든 실수와 무지를 용인해주는 분위기....그러나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 수익을 내는 이익집단이기에 저게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런 상황을 겪었고 그로 인해 이직한 지 한 달도 안돼서 퇴사하기도 했기에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난 당신이 이런 리스크를 모두 고려하고 타 업계 이직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도 후회와 아쉬움이 덜하기 때문이다. 난 이 모든 것을 고려한 후 타 업계로 이직하였기에 나의 선택에 한치의 후회도 없었고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매일매일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