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함의 근본은 뭘까?
나 오늘 섭섭했어
데이트가 끝난 후 그에게 섭섭하다 말했다.
오늘은 이번 연애에서 처음으로 불만을 토로한 날이다.
내가 화난 건 만난 지 5시간도 안돼서 각자 집에 가자고 말할 때 그의 태도였다. 너무 무심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마치 데이트에 억지로 나와 부랴부랴 미션을 클리어하고 가려는 사람 같았다.
다음 주부터 한 번밖에 못 본다며 아쉽다 한 사람이?
얘는 내가 보고 싶었던 게 맞나?
일단 가자 하니 집에 가겠는데, 혼자 집으로 오는 길에 너무 화가 나는 거다. 화난 이유는 마음대로 헤어지는 시간을 정하는 것이었고, 설명 하나 없이 가는 것 때문이었다.
저녁에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찍 찾아온 것은 나를 일찍 보고 싶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헤어지는 것도 자기 멋대로 먼저 정하다니?
만일 그가 오늘 아침부터 돌아다녀서 너무 피곤하다 했다면 내가 먼저 가라 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저녁에 가족 약속이 있어 이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했다면 처음부터 그 상황을 알려주지 않은 것이 아쉬웠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알겠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솔직한 이야기 하나 없이 나를 집으로 보낸 것이다.
일단 그에게 말하기 전 이런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지 안 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해봤다.
10분간 고민한 결과 이번 건은 말해야겠단 결론이 났다. 연인 사이라면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이고 말을 안 하면 나 혼자 꽁해있을 것이다. 센스가 부족한 그는 나의 이런 꽁한 감정을 절대 눈치 못 챌 것이기에 말하는 것이 맞았다.
아까 섭섭했어
난 그에게 섭섭하다 말했고 다음부터는 상황이나 컨디션의 변화가 있을 때 미리 말해달라 했다. 이런 나의 연락에 그는 아침부터 돌아다녀 피곤했다며 미안하다 했고, 그렇게 나의 ’ 서운 폭발’(?) 대화는 일달락됐다.
섭섭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천 명의 사람들에겐 천 개의 사랑 모양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모양을 가지고 사랑을 한다. 이렇게 모양이 다르게 되면 당연 ‘마음에 차지 않는’ 일이 생긴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 모양의 사랑을 그리는 사람은 네모 모양의 사랑을 그리는 사람의 뾰족함이 사랑이 아니라 할 것이고, 반대로 네모 모양의 사랑을 그리는 사람은 모서리 없음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방에게 서운한 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해야 할 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동그라미를 사랑하는 네모는 네모를 깎아 동그라미가 되어야 그 사랑이 잘 유지될 수 있느냐?
그렇지는 않다. 완벽히 100퍼센트 맞는 사람이란 없기에 자신을 상대방에 맞추어 바꾸는 행동은 나를 잃어갈 뿐,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자기를 잃어 동그라미가 됐다 해도 완벽히 크기까지 딱 맞는 모양이 될 수는 없으니깐.
솔직해지는 것 그리고 이해
그럼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상대방의 삐죽함과 모서리 없음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솔직한 대화를 하는 것.
AND 역지사지.
나라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 또한 40분을 늦은 나를 이해해줬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그가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도 사람인데 당연한 거지.
완벽히 나와 꼭 맞는 모양은 없다. 그러니 다르다를 틀리다고 보지만 않아야 한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한 ‘그랬구나~’ 캠페인처럼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비단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하다.
그가 그랬듯 나 또한 점점 그를 온전히 이해해야 한다. 아직 우린 사랑하기에도 바쁘기에 조금 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랬구나, 너무 피곤해서 그랬구나
#연애도 어쨌든 사람 관계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