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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주카 Aug 02. 2022

바이앙의 왕, '루이스 곤사가' 사망

브라질 대중 음악 작곡가의 애환과 성공

1989년 8월 2일 바이앙의 왕이자 작곡가인 루이스 곤사가가 브라질 북동부 지역의 헤시페(PE)에서 사망했다. 


도리바우 카임미, 지우베르토 지우, 카디타노 벨로조 같은 브라질 음악계의 거장들에게 찬사를 받은 그는 '바이어웅 Baião' (1946), '하얀 날개' (1947), '시리도', (1948), '주아제이로 Juazeiro' (1948), '키 넹 질로 Qui Nem Giló' (1949)와 '발러웅 데 도이스  Baião de Dois' (1950) 같은 음악을 작곡하면서 유명해졌다.


포호를 연주하는 연주가들 @브라질아젠시아

훌륭한 기악 연주자이기도 한 그는 바이어웅(baião), 쇼테(xote), 샤사도(xaxado)와 같은 리듬을 대중화했다.


1912년 12월 13일 엑수(페르남부코 주) 시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자누아리오에게서 아코디언 연주법을 배웠다. 청소년기에 그는 무도회, 포호스(Forrós)와 시장 등지에서 공연했다. 


Forró는 페르남부코 주 축제의 하나이다. 이는 브라질 북동부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특히 6월 축제가 많은 페스타 주니나 등이 열리는 브라질에서 매우 인기 있고 일반적인 축제이다. 포호 파티는 쇼치, 바이어응, 아하스타-페와 샤샤도와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의 이름을 지칭되는데 독특한 장르를 형성한다. 포호스 노래는 전통적으로 아코디언 언, 자붐바왕 삼각 트리오로 연주된다.


@UOL

브라질 음악과 관련해서는 추후 글을 올리고자 한다.


18세가 되기 전 루이스 곤사가는 한 대령의 딸과 사랑에 빠졌고 소녀의 아버지에게 쫓겨났다. 당시에는 브라질의 신분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심했다. 루이스는 대령을 죽이겠다고 위협했으나 오히려 대령에게 구타를 당했다.


분개한 그는 집을 떠나 세아라의 크라토 군에 입대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브라질의 여러 주를 여행했으며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1939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군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는 홍등가와 신입생 쇼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방황의 시기는 이어졌다.


아리 바호조 @위키피디아

그러던 가운데 1941년 아리 바호조의 쇼에서 그의 노래 '비라 이 메셰 Vira e Mexe (변하고 또 변해라라)'로 박수를 받으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리 에반젤리스타 바호조(1903년 11월 7일 ~ 1964년 2월 9일)는 브라질의 대중 음악 작곡가이다. 그는 소위 "samba-exaltação"을 표현한 작곡가로 브라질의 아쿠아렐라 Aquarela do Brasil의 저자로 알려진 그의 삼바스로 유명해졌다. 또한 영화 브라질 (1944)의 노래 리오 데 자네이로와 함께 최고의 오리지널 곡으로 아카데미 상 후보에 올랐다. 


이러한 성공은 루이스의 일생에 대변혁을 가져왔다. 그는 기록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라디오 방송인 국립라디오 방송 Rádio Nacional에 고용됐다. 일명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의 머리속이 복잡했다. 의상부터 바꾸기로 했다. 그는 카우보이 옷을 입기로 결정했고, 이는 그가 예술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인생역전이 일어난 것이다.


1945년 4월에 그는 가수로 데뷔했다. 첫 번째 노래를 녹음했다. 그는 사울로 아우구스토 시우베이라 올리베이라와 듀엣으로 '단사 마리큉야 Dança Mariquinha'를 노래했다. 1946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와의 재회했다. 얼마나 감격적인가. 16년만의 귀향길은 그렇게 가벼웠다. 날개를 단든 그는 금의환향했다. 브라질에서 이런 모습은 최근에도 있었다. (제제 카마러웅 형제 이야기는 나중에 들려 주겠다.)


그는 움베르토 테이셰이라와 협력해 'Respeita Januário'라는 노래를 썼다. 1948년에 그는 페르남부코에서 엘레나 카파우칸치와 결혼했다. 36세의 늦은 나이였다. 그녀와 사이에 호싱야라는 딸을 낳았다. 

루이스는 또한 합창단 가수 오달레이아 구에데스의 아들인 곤사징야의 양아버지이기도 했다.


루이스 곤사가는 40개 이상의 녹음된 앨범을 남기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라질 대중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셀 수 없는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는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브라질 서민의 마음을 보듬어줬던 그는 그렇게 세상과 길을 달리했다.



#루이스곤사가 #브라질작곡가 #브라질가수 #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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