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는 인간이어서 불행하고 불안하다.
지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잠시 눈을 감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기뻤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기억에 나는 것을 몇 가지 떠올려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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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으로 눈을 감고 나를 힘들게 했던, 불행했던, 지우고 싶은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어두운 기억을 마주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용기를 내어 한 번 떠올려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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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행복했던 기억은 하나의 장면, '순간'으로 떠오르고 불행했던 기억은 특정 '기간'으로 떠오르지는 않나요? 예를 들자면, 행복했던 기억은 합격한 순간이나 특정 장소에 놀러 갔던 순간처럼 짧은 시간으로 떠오르고 불행했던 기억은 힘들었던 기간이나 아팠던 기간처럼 긴 시간으로 떠오르지는 않았나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나 제 주변인, 저희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그런 패턴이었습니다. 그리고 '왜 그런 것일까?'라는 물음에서 행복과 불행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스레 불행하다'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행복보다는 불행에 집중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냥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에서도 이는 생존을 위하여 위협에 대비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부정적인 결과를 미리 예측해야 실제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대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이에 따를 최악의 결과를 상상하고 불안해합니다. 위협에 대비하라는 뇌의 명령에 따라서요. 아론벡(Aaron T. Beck)은 인지치료이론에서 이를 파국화(catastrophizing)의 인지 왜곡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생존하고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한 생각에 잠식당하곤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생존을 도리어 위협하고 있다면, 이처럼 모순적인 생존본능이 또 있을까요?
쨌든 인간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부정적인 사건에 더 강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Baumeister et al., 2001). 그래서 행복하려 애쓰지 않으면(애석하게도) 자연스레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이제 행복을 위해 애써봅시다. 뭐부터 해볼까요? 나의 행복감을 바닥에 곤두박질치게 하는 녀석인 '불안'을 다뤄보는 건 어떨까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실직이나 사별처럼 외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위협이나 손실로 인한 불안을 현실불안(realistic anxiety)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열등하다고 느끼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해석에서 오는 불안이나 누군가에게 버림받을까 마음 졸이게 되는 불안과 같이 내적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을 신경증적 불안(neurotic anxiety)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는 둘 중 어떤 불안을 더 고통스럽게 느낄까요? 바로 신경증적 불안입니다. 현실불안은 실제 마주한 일이기에 불안의 크기는 곧 사건의 크기이고 사건이 해결되거나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신경증적 불안은 실체가 없는 불안이기에 그 크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고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실제 사건이 아닌 심리내적 과정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우리를 갉아먹는, 죽고 싶게 만드는 그런 불안은 '내가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불안은 분명 나아집니다. 자연스레 불행하게 두지 말고 불안을 다루며 천천히 행복을 향해 고개를 듭시다.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불안을 다뤄나갈지에 대한 것들을 이후의 글에 녹여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긍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