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어의 노예다.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100명 중 95명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떠올릴 겁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몽글몽글해지는 빛나는 순간들 말이에요. 맞습니다. 그것은 실로 행복입니다. 누구나 인정할 거예요. 그런데 샤워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는 어떤가요. 사뿐한 바람과 함께 새소리가 들리면 어떤가요. 이런 소소하게 기분 좋은 순간들도 행복이라고 규정하나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조우하는 작고 여유로운 순간들도 행복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나요? 행복을 별 거라고 생각하면 작게 마주하는 편안하고 안전한 순간들을 잠깐 소비하고 떠내려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물 흐르듯 떠내려 보낸 긍정 감정들은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양분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연스레 내가 껴안게 되는) 불행만이 내 삶을 채워나갑니다.
그러니 우리 일상에서 느끼는 감사한, 기분 좋은 모든 것들에 이제 '행복' 이름표를 붙여줄까요?
'인간은 언어의 노예'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언어가, 명명하는 단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맥락이었습니다. 독일의 언어철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도 언어가 사유의 형태를 결정한다는 관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사실 우리에겐 매일매일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 식사를 챙겨주는 것, 누군가가 나를 고용한 것, 하다 못해 내 사지가 멀쩡한 것조차 사실은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적어도 누군가에게는 더욱).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감사한 일'로 정의하지 않으면 감사한 일이 내 삶에 실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름 붙여줄 때 '감사한 일'이 정말 '감사한 일'이 되는 것이고 '행복'이 리얼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미칠듯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두통이 한순간 사라진 거예요. 그럼 참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두통이 없는 이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하지는 않잖아요.
저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이 그저 편안하고 안전한 모든 순간들, 자기 전 특별한 근심 없이 눈을 감을 그날들을 행복으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고통의 연속인 우리네 인생에 행복밸런스가 조금은 맞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나와 당신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씩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당신이 행복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굳이 굳이 이름표를 붙여야 해요. 떠내려 보내지 말고 지나치지 말고 굳이 굳이 기분 좋은 순간들을 내 앞으로 데려와서 '행복' 이름표를 붙여주고 말해봅시다. 이렇게.
'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