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해'
'나는 절대 무능해 보여선 안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해'
'성공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어'
당신은 어떤 당위적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나요? 어떤 것을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이런 당위적 사고들이 내 삶과 자유를 얽매고 나를 불행하게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대부분의 것들이 사실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다면 믿으시겠나요. 인생에서 사실 당연하고 절대적인 것은 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왜 이토록 '반드시 넘어야 하는 기준'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내가 만든 세계의 기준'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빡빡한 기준을 가진 세계를 내가 창조했어요.
인간중심 상담이론의 창시자 칼 로저스(Carl Ransom Rogers)는 현상학적 장(Phenomenal field)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 '내가 만든 세계'입니다. 어렵게 말해 '내가 지각하고 경험하는, 나에게 드러나는 방식대로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모든 것들이 나의 세계가 되어 내 인지와 감정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0억 명의 개인이 하는 경험이 모두 다르니 현상학적 장도 80억 개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내가 만든 세계'의 창조자이자 주민인 셈입니다.
현상학적 관점이 이러합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는 없고, 내가 바라보는 내가 만들어낸 세계만 있을 뿐입니다. 내 앞에 놓인 펜을 볼 때도 내 앞에 펜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학생에게는 '공부하는 도구'로 화가에게는 '선을 그리는 도구'로 과학자에게는 '물리적 객체'로 다르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같은 상황에서 모두 다른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 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 A는 '어.. 저 사람 나한테 서운한 거 있나.'라고 생각하고 B는 '뭐야 내 인사를 안 받아? 어이없네;.'라고 생각하고 C는 '오늘 점심 뭐 먹지.'라고 생각하고, D는 '나를 못 봤나 보지 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러니 이제 내가 생각하는 당연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셨을까요. 우리는 그저 내 방식대로 해석을 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기에 안심하십시오. '내가 해석하는 나'가 '진짜 나'인 것입니다. 내가 나를 괜찮은 존재로 해석하면 괜찮은 존재입니다. 내가 나의 열등함을 포용해 주면 그것은 포용된 것입니다. 내가 나를 충분한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면 나는 충분한 사람인 것입니다. 내 해석이 그렇다는데 타인이 뭐 우짤 것입니다. 우리 이제 나를 바라보는 내 해석 즉, '나만의 세계'의 조도를 조금 높여볼까요. 조명도 여기저기 달아보고, 먹구름도 조금 걷어내 봅시다.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누가 갈색 눈동자를 가진 제게 '파란 눈동자 진짜 별로다.'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 파란 눈동자 아닌데?' 내가 파란 눈동자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자, 이제 '넌 부족해.' '넌 못해.' '넌 좀 별로야.'라고 하는 타인의 지적에 답해봅시다. 이렇게.
'엥; 이 정도면 괜찮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