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는 게 지긋지긋해

한국 교실 속 피라미드 구조와 끊임없는 경쟁

by 브라움

"나 한국에 정이 떨어졌어."

일 년에 두 번, 명절에 보는 사촌형이 소파에 앉으며 그리고 한숨을 얹으며 뱉은 말입니다. 사촌형은 선교사인 고모와 고모부의 사역지인 오스트리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학창 시절을 오스트리아에서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나름 한국생활 15년 차입니다. 그런 형이 갑자기 한국에 정이 떨어졌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괜스레 한국 홍보대사가 되어(아무도 임명하지 않았지만) 이 나라에 대한 일종의 오해가 있다면 해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엔 섣불리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가 잘돼도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아."

맞는 말이었습니다. 가족이나 정말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의 성공을 달갑지만은 않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자신과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한국인'의 특성이었다는 것을 이날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급을, 학교를 피라미드 구조로 인식합니다. 내가 일진인지, 잘 나가는지,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지, 친구가 많은지, 찐따인지 등 여러 단계를 나눠 놓고선 자신의 자리가 어디쯤인지 가늠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매일이 경쟁이고 투쟁인 셈입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학생들은 점차 여유 없는 성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출세에 진심으로 기뻐해줄 여유가, 내 부족함을 기꺼이 껴안아줄 여유가, 주변인의 성공을 나의 실패로 해석하지 않을 여유가 없는 그런 성인으로요.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은 '넌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어.'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공감하지 못합니다. 항상 자신의 존재를 피라미드 구조 속 '몇 층'정도쯤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까요. 자신을 사랑할 타당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듯 뚱한 표정으로 반문하곤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또 학생이었던 당신께 이런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수식하는 많은 단어들 때문이 아닌, 당신의 어떠함으로 인함이 아닌, 당신의 존재만으로 당신은 가치 있습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드릴 말씀은 있습니다. 당신이 탄생한 순간 세상은 처음으로 막을 올렸고, 당신이 눈을 감을 마지막 날 세상은 소리 없이 막을 내린다는 것. 당신의 의식이 닿는 동안에만 바람은 시원하고 꽃은 향기 나며 하늘은 푸르다는 것. 그러니 이 세계는 당신이 존재하는 동안에만 실재하는 작품이라는 것.

그래서 저는 이런 말로 글을 끝맺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존재를 긍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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