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이 불행한 이유 6.

옆구리는 조금 시린 편이 나을지도 몰라요.

by 브라움
“넌 나고 난 너야 / 난 너고 넌 나야 / 마음이 같다면 / 둘은 서로가 될 거야”
— 지코, 〈너는 나 나는 너〉

나와 당신이 불행한 이유 6. 넌 나고 난 너라서


지코는 '넌 나고 난 너'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렇게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융합된다는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혹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너는 내가 되고 / 나도 네가 될 수 있었던 / 수많은 기억들'이라는 가사로 사랑을 묘사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그 인생을 어찌할 수 없고 상대방도 내 마음과 삶을 어찌할 수 없으니, 이 얼마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끝내 움켜쥐려는 예견된 비극인가요. 이처럼 타인과의 융합된 관계가 우리에게 불행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너의 기쁨이 내 기쁨이고 너의 불행이 내 불행이야.'라는 뉘앙스를 부모님께로부터 가장 밀접하게 경험하곤 합니다. 서로를 적절히 독립된 하나의 객체로 바라보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융합되면서부터 정서적 갈등이 시작됩니다. 너의 성적, 너의 취업, 너의 결혼을 '나의 무엇'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녀를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우리는 연인에게, 친구에게 융합되어, 그들의 감정을 내 감정인 것처럼 뒤섞고, 그들의 행동을 내 행동 다루듯이 통제하곤 합니다. 애초에 불가능한 것을 계속 시도하는 것이죠. 그렇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대방의 감정에 불안하고, 상대방의 행동에 좌절하게 됩니다.


가족치료의 선구자 보웬(Murray Bowen)은 '자기 분화(self-differentiation) 수준'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이를 설명했습니다. 이는 '한 개인이 타인과의 정서적 융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에 관한 개념입니다. 또한 이는 '타인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분화 수준이 낮으면 타인의 감정이 전염되어 타인의 감정이 내 감정이 되고, 어쩌면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과잉 순응에 빠지기도 합니다. 보웬은 이렇게 '미분화'된 상태가 결국 '단절'을 야기한다고 합니다. 상대방과 융합된 관계에서 오는 불안이 너무 커 '관계를 끊음'으로서 불안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피하여 나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적 시도로 보입니다.


지금 내가 어쩔 수 없는 누군가로 인해 불안하다면, 또 내가 다룰 수 없는 그것이 너무 소모적이라면 거리 두기를 할 때입니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정서적으로 가까우면서도 휘말리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는 '건강한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은 모든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움켜쥔 그것을 놓기가 힘드실 텐데요. 분리 과정에서 박탈감 혹은 단절감을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요, 걱정 마세요. 이는 오히려 더 큰 유대감의 시작입니다. 더 단단한 유대의 초석입니다. 부디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존재를 긍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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