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의 주인이 아니라, 일이 나의 주인이 된 것 같을 때
괜히 잡생각이 많아지는 때가 있다. 보통은 한가해지면 불쑥 찾아오는 녀석이다. 그런데 요즘은 체력이 떨어질 때 자주 만나는 마음이다. 부정적인 이유를 찾는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주로 눈에 보이는 것, 몸으로 느껴지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만든다. 내 앞에 줄 서 있는 해야 할 일이 그 단골 메뉴다. 그 일들은 먼저 나를 만나겠다고 몸싸움한다. 이런저런 사정 탓에 해야 할 일을 다 못 마친 채 미루면 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혼자서 책임지는 일을 완결짓지 못할 때 오는 압박감이랄까. 문제는 바쁘게 해도 마찬가지란 점이다.
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거대한 일의 일부를 해치웠는데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일이 어디선가 나타난다. 놀랍게도 중요한 일이다. 이미 나래비를 세워둔 해야 할 일도 꽤 중요한 것들인데, 새로 나타난 일도 그 못지않은 거물급이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복잡한 짱구, 아니 머리를 굴려 편하고 빠르게 일할 방법을 궁리해 보지만 대부분은 실패한다. 어쨌든 이런 패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나브로 살도 찌셨다. 못 보던 튜브가 허리춤에 붙었고, 엉덩이와 허벅지도 두툼튼실해졌다. 집중력도 자주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문득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분명 내가 어느 만큼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성적도 나쁘지 않은데, 내가 일의 주인이 아니라 일이 나의 주인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해서 시작한 일인데 그 일을 위해 내가 없으면 안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우습다. 쉬는 시간에 마음껏 놀기는커녕 아플까 봐 걱정이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이제 보니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느라 무척 바쁜 사람이 돼 있었다. 해야 할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없어졌다. 일을 시작한 것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일상의 대부분이 '노오력'으로 가득 차 버렸다. 마치 그것이 인생을 결정하는 모든 것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 같으니. 물론 노력은 매우 중요하고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이게 미래를 결정짓는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노력 뒤의 기다림이 더 중요하다. 농부가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노력 뒤에 결실에 꼭 필요한 햇살과 비바람이 제때 오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난 그럴 여유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다. 노력만큼, 기다리는 것도 즐기는 힘이다. 그러고 보니 바쁜 와중에 묵상의 시간이 됐던 1시간짜리 산책 코스를 가본 지 오래됐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했던 운동이었는데 여러 이유로 거르거나 뜸해졌다. 그렇게 좋아했던 글쓰기와 독서도 미뤄둔 지 오래였다. 이 모든 것을 다시 하는 것마저 최선을 다해야 할까 봐 심란하지 않게, 하루에 한 시간, 한 가지씩은 해보자고 마음먹는다. 두 가지를 하면 더 좋고. 이게 지금 내가 애쓰는 것 못지않게 꼭 해야 할 것이란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삶의 여유 없이 노력만 가득 하다면
닭가슴살만 먹는 기분일 거에요.
몸 만들겠다고 좋은 것만 먹으면 뭐하나요, 운동을 해야지.
여유가 없다면 삶에 꼭 필요한 근육은 만들어지지 않지요.
저는 기왕이면 이 믿음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