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 (1) 견딤이 힘을 때

노르웨이 가서 떡볶이를 팔자!

1. 36살,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나?

매번 숨이 턱 막히는 질문과 징그러운 일상 사이를 헤맬 때마다 나는 슝 ㅡ 노르웨이로 간다.


2. 아침에 일어나서 30분은 누워서 숏츠를 봤다. 무엇을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유익한 정보들이 한 눈으로 들어와 한 눈으로 나갔다. 남편도 출근시간에 맞춰 어렵게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도 가까스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같이 나선다. 그는 일터로, 나는 헬스장으로.

헬스장에 가서 짤막한 스트레칭을 하고, 실내자전거에 앉는다. 요새 보고 있는 브리저튼 시리즈를 한 회 틀고 열심히 페달을 돌린다. 스피드는 22에서 23 사이로, 한 편이 55분이니 25분은 앉아서 타는 싸이클에, 후반 25분은 서서 타는 싸이클로 간다. 은근한 열이 오를 때쯤이면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드라마는 한 편 끝나있고 나의 예정된 운동도 끝이 난다. 다시 집으로 와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켑슐커피 한 잔을 디카페인으로 내려 마신다. 쇼츠를 보며 삶을 계란 2개를 커피와 같이 먹고, 대충 싱크대에 넣어놓은 후에 연구실로 향한다. (늘 헬스장엔 뭔가를 하나씩 놓고 온다. 오늘은 텀블러를 놓고 와서 챙겨 가야 한다.)

문득 어제 남편과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여보, 나랑 노르웨이 가서 살래?"

"노르웨이 가서 뭐해?"

"떡볶이 팔자. 노르웨이에 떡볶이 집이 있나?"

"검색해봐"

"없다. 없어 노르웨이는 떡볶이 집이 없어!"

"그래 가자~"

"진짜 괜찮아?"

"응, 가자"

"에이, 어떻게 가"

"변덕쟁이!"

"그래도 가고 싶다. 노르웨이"

"노르웨이 가봤어?"

"아니"

깔깔깔


대충 이런 식의 흐름이다. 하도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자는 내 이야기에 지칠 법도 한 남편은 기꺼이 같이 공상에 참여해주고, 나는 매번 어디선가 유럽의 어느 나라들을 가져와 그때그때 떠오르는 음식들을 붙여본다.


'너는 왜 맨날 북유럽이야?'

무심코 카톡 채팅방에 이 에피소드를 남기니, 나를 오래 본 친구가 보낸 메세지였다.


그러고 보니, 나의 북유럽행 플랜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맨 처음은 노르웨이가서 연어잡자였다)

삶이 매너리즘에 빠질 때마다 그렇게 머릿 속에서는 어느 먼 먼 나라로 떠나는 버릇이 있나보다.

그래서 우연히 <카모메 식당>을 본 이후로는 더 명료한 상상들을 하게 되곤 했다.


3.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연구자, 교육자, 신혼부부, 아내, 딸, 친구, 집사 ...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쓰인 순서대로 (무의식적인) 중요도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게 주는 중압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전쯤, 내가 원했던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이 공허함과 견디기 힘듦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역시 모르겠다.

오늘 빛자리 님의 글을 처음으로 읽어봤다.

<남들보다 느린 내 보폭이 왜 이토록 수치스러울까요> 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에게 역도의 '인상과 용상'의 비유로 깨달음을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어쩐지 나는 역도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후에 한 번도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은 상태로 '인상'과 '용상'의 뜻만 달달 외운 선수 지망생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든다. 어떤 선수가 될지 직접 부딪혀보고 역기를 들어보고 나한테 맞는, 혹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야 할 텐데, 역도 학원에 등록만 한 사람인 것 같다.

이것도 그렇게 딱 맞는 비유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주 견디기 힘들다, 는 말이 계속해서 입밖으로 튀어 나온다.


4. 북유럽이라는 유토피아에 떡볶이라는 선악과


노르웨이에 떡볶이 집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나는 꽤, 설렜다.

없다는 것. 그 공백이 오히려 가능성처럼 느껴졌다. 이미 누군가 채워놓은 자리가 아니라, 아직 아무도 꽂아두지 않은 깃발 하나가 꽂힐 수 있는 땅. 북유럽이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살짝씩 들썩이는 건, 거기가 실제로 좋아서라기보다는(실제로 가본 적이 없으므로?) 거기가 아직 나에게 실망되지/실망시키지 않은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카모메 식당>의 사치에는 핀란드에서 주먹밥을 팔았다. 왜 핀란드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녀는 딱히 이유를 대지 않았다. 그냥 거기가 좋을 것 같았다고, 그 정도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유 없이 좋을 것 같다는 확신. 그 가벼운 무모함이 너무 부러웠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그런 종류의 확신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매너리즘이 올 때마다 북유럽이 떠오른다는 건, 나에게 그곳이 단순한 도피처가 아닐지도 모른다. 도망치고 싶을 때 사람은 어둡고 좁은 곳을 상상하지 않는다. 빛이 있고 공기가 있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상상한다. 일종의 유토피아다.

떡볶이는 그 상상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고른 것이다. (사실 떡볶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학위도 아니고, 논문도 아니고, 역할도 아닌—그냥 내가 잘 알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리고 내가 의미 있게 줄 수 있는 것.


"흔적은 나타나지 않으면서 의미한다."(레비나스의 <흔적>(1972, 40) 중)


북유럽행 플랜이 실현되지 않는 동안에도, 그 공상은 조용히 어딘가에 쌓이고 있었다.


남편이 "가자"라고 말해줄 때마다, 친구가 "너는 맨날 북유럽이야"라고 짚어줄 때마다. 나는 그때그때 흘려버렸지만, 그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조금씩 다듬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무대에 올라가지 않은 역도선수에게도, 바벨을 들었던 상상의 횟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근육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향이 된다.


36살의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노르웨이 가는 길 어딘가. 아직 티켓도 없고 레시피도 없고 떡볶이 냄비도 챙기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쪽을 향해 있는 것만큼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걸로 지금은 충분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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