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쓰기라는 선물
대학에서 글쓰기 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2020년도 1학기부터였다. 박사를 수료하고 바로 강사로 임용이 되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불청객. 코로나 시대가 맞물려 시작됐다. 집에서 먼 대학이어서 차도 샀는데, 그렇게 2년 동안을 학교에 가지 못하고 비대면으로 강의를 이어갔다.
온전한 캠퍼스를 다시 찾게 된 것은 2022년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때의 학생들을 기억한다. 마스크를 쓰고 처음 강의실에 들어오던 얼굴들. 서로 눈만 보이는 채로 한 학기를 같이 보냈다. 코로나를 겪은 이 세대는 성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단절을 먼저 배웠다. 대학입시라는 엄청난 압박 아래에서 어느 날 갑자기 성인이 되어버렸고, 캠퍼스의 낭만을 채 누리기도 전에 비대면이라는 유리벽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학생들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SNS와 생성형 AI가 익숙하고, 짧고 빠른 것에 반응하도록 훈련되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낭만적인 꿈과 희망을 품고 싶은 스물 몇 살들이다.
그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꽤 오래 생각했다.
대학 글쓰기 수업의 목표는 보통 '논증하기'다. 주장을 세우고, 근거를 들고, 반론을 예상하고, 설득하는 글을 쓰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그 앞에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논증을 배우기 전에, 먼저 글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있는가. 내 안의 말을 꺼내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를 몸으로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2025년부터.
나는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성적과 관계없는) 손글쓰기 시간을 갖게 했다.
처음에는 종강 날에, 지금은 OT 날과 종강 날에 이런 시간을 마련한다. 핸드폰도, 패드도 모두 집어넣고 오롯이 펜 하나로 A4용지 한쪽을 써내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___로소이다"와 같이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문장에서부터, "대학생활의 목표는 세 가지이다", "10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상상한다" 등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장들을 제시하면, 학생들은 해당 문장을 선택해서 첫 문장으로 쓰고 뒤에 이어질 내용을 써나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속 화면을 보며 약간은 못마땅한, 혹은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 혹은 이런 걸 왜 해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강경하게 한 쪽을 다 쓰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한다. 그러고 나서 유튜브로 교보문고 플레이리스트 중 하나를 틀어준다. 그러면 한두 명씩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10분 정도가 흐르면 교실에는 사각사각 글자를 쓰는 소리가 가득 찬다. 골똘히 생각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침묵 속에서 자기를 탐색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30분, 40분,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글쓰기가 시작되고 30분 정도가 지날 때쯤, 나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우리가 이 A4 한 쪽 채우기가 참 쉽지가 않죠? 그런데 이게 여러분의 글 쓰는 호흡이고, 지금 쓰는 문장들이 자연스러운 여러분의 문장이에요. 만약에 생성형 AI한테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줘, 1000자 정도로 써줘, 라고 한다면 10초도 안 되어서 뚝딱 글 한 편을 내놓겠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너무 쉽게 AI한테 잠식당하지 말아요 우리."
글쓰기는 고통과 희열을 동반하는 작업이다.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도 글로 쓰려면 버퍼링이 걸린다. 내가 문장을 어떻게 구사하는지, 내가 즐겨 쓰는 표현과 호흡이 긴지 짧은지, 모두 다 써봐야 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자기만의 목소리가 생긴다. 그 목소리는 어떤 AI도 대신 찾아줄 수 없다. 그러니까 진짜로 써봐야 안다.
한숨을 돌리며 글을 마무리한 학생들이 하나 둘씩 글을 내고 강의실을 나간다.
간혹
"이거 혹시 다시 돌려주시나요?"
같은 질문을 하면서.
그러면 나는 답한다.
"언젠가는 돌려줄 거예요. 여러분의 삶의 어느 때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진심이다.
어쩌면 대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의 찰나, 이제 막 신입생으로 입학한 후의 첫 주, 복학한 후의 첫 학기, 고민이 많은 2-3학년, 그들의 순간들이 글 안에 빼곡하게 모인다.
이런 글을 만날 때가 있다.
'아, 내가 이렇게 손으로 글을 써본 것은 얼마만인가. 또 내가 이렇게 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언제인가. 처음인 것 같다. 손을 움직여 글을 쓰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무언가 더 생각하고 싶다. 음악이 몽환적이어서 그런가. 이 순간이 황홀하다.'
주체할 수 없이 기쁘다. 그렇지, 바로 그런 순간을 우리가 사랑해보자는 거지.
또 이런 글도 있다.
'나는 상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을 하니 미래가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나는 걱정이 많다. 그래서 미래를 생각하면 늘 불안했고, 그 불안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런데 '상상한다'는 문장은 더 좋은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서 생각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는 미래를 상상해야겠다.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말고.'
참 다행이구나 싶다. 그렇지, 그렇게 생각을 바꿔보는 힘이 글에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으니까.
내가 학생들에게 이 시간을 주고 싶었던 건, 결국 글이 가진 수행적인 힘을 몸으로 한 번쯤 느껴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은 단순히 생각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생각을 만들고, 감정을 정돈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한다. '상상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면 미래가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나는 ___로소이다'라는 문장 앞에서는 자신을 정의해보려는 용기가 생긴다. 어떤 말을 고르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것이 글의 힘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도 강의실 문을 열기 전에 플레이리스트를 미리 찾아두고 새 학기를 시작했다.
사각사각, 그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우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학생들이 온전히 글을 쓰며 그 시간에 몰입하는 경험을 하게 되길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