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필수 과목인 대학 글쓰기 교육의 딜레마를 극복하려면.
1. 교양 필수 과목인 대학 글쓰기의 현황
종합대학에서는 보통 '글쓰기' 과목을 교양 필수로 지정하여 1학년 학생들에게 수강하도록 권장한다.
서울대에는 <대학글쓰기>, 고려대/연세대/중앙대는 <글쓰기>, 서강대와 시립대는 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과학계열을 나누어 글쓰기 과목을 운영하고, 한국외대는 <미네르바인문 (1):읽기와 쓰기>를,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논리적 글쓰기>를, 성균관대는 학술적, 창의적, 과학기술 글쓰기, 이화여대는 통합적 사고,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한양대는 AI시대 쓰기의 힘, 통합사고와 읽기와 기술 등과 같이 대학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세분하여 글쓰기 과목을 나누어 운영하기도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대학에서 '글쓰기' 과목이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학술적 글쓰기를 위한 소양을 키우기 위해 주로 저학년 때 이 과목을 이수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이자 AI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글쓰기'라는 과목이 진짜 필요하다고 느껴질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학에서의 글쓰기 과목은 교양 필수라는 점에서 '딜레마'가 있다.
2. 교필 과목이라는 딜레마와 AI의 등장, 여전히 중요한 '주체성'
교양 필수라는 말은 곧 선택권이 없다는 말이다. 원해서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도 별로 없고, 의무적으로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실제로 내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1주차에 설문을 해보면, 70% 이상의 학생이 이 수업에서 처음으로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운다고 답한다. 대학 입학 전후로 글쓰기 관련 교육이나 클리닉을 경험한 학생은 20-25% 수준에 불과하다. 학술적 글쓰기 경험 역시 낮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학생은, 처음 해보는 글쓰기 수업에서 동시에 상대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학생들은 글쓰기를 "생각을 정리하고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라고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어렵고 부담스러운 활동"이라고 말한다. 배우고 싶다는 욕망과 두렵다는 감정이 공존한다. 논리적인 글의 구성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서도, 막상 글을 쓰면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에서 먼저 막힌다. 이 간극이 글쓰기 수업을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에 생성형 AI까지 등장했다. 문장 생성이 어려운 학생에게 AI는 너무나 현실적인 대안이다. 여러 대학이 AI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사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심지어 서울대학교에서는 AI활용을 2026학년도 1학기부터 전면 금지했지만, 학생들의 일상적인 도구 활용을 전면 통제하는 것은 실효성이 낮다. 그렇다고 AI를 외면하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AI 활용 능력 자체가 역량으로 평가받는 시대에, 무조건적인 제재는 적절한 교육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결국 이 수업의 목표를 여기에 두게 됐다. AI를 활용하더라도 사유의 주체성을 AI에게 내어주지 않는 것. 주제를 선정하고, 근거를 마련하고, 문장을 고치는 전 과정에서 학생이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의 후반부를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논증문을 쓰기 위한 단계적 학습을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맨몸 발표'다.
1차적으로는 논문 개요를 써서 튜터링을 하며 주제와 근거를 정돈한다. 이후 논증문의 주제는 무엇이고 왜 그 주제를 선택했는지, 어떤 근거를 활용할지에 대해 5분 정도 짧게 브리핑을 한다. 5주 정도의 시간 동안 논증하기에 적절한 주제라고 생각이 되면 통과이고, 아니라면 주제를 바꾸거나 가지고 온 주제에서 다시 소주제를 만들어 그것만 논증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10분 정도의 발표를 진행하고, 10분 정도의 토론을 통해 여러 피드백을 듣게 한다. 그리고 최종 레포트를 쓰는 것이다. 이 모든 발표의 과정에서 학생은 PPT 슬라이드 3장에서 5장 정도를 만들고 맨몸으로 나와 발표해야 한다. 무언가를 보고 읽거나 대본을 만드는 것은 금지된다. 또 현장 질문도 받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교수자로서 학생들의 문장 표현과 발표나 토론에서의 태도 등을 교정해준다. 학술적인 의사소통에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현장에서 알려주는 것이다. 거의 1:1로 진행되는 이 강의에서 학생들은 빠르게 배우고 자신의 학습에 필요한 것들을 배워나간다. 주체성을 확보하면 여러 어려움은 생각보다 쉽게 극복된다.
3. 교양필수과목이기에 기꺼이 해야 하는 일
사실 이 모든 교육에 앞서, 교수자로서 먼저 해야하는 일, 바탕에 두어야 하는 마음가짐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 다른 교육 환경에서 자라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편차가 있다. 어떤 학생은 글쓰기가 익숙하고, 어떤 학생은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오래 걸린다. 그 편차를 좁혀서 최소한의 지식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 학술적 의사소통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익히게 하는 것, 그리고 대학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매너를 알려주는 것. 이 모든 것이 글쓰기 수업이 1학년에게 해주어야 할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과목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앉아있을 거라면, 적어도 뭔가를 가지고 나가게 해줘야 하니까. 고학년이 되어 전공 논문을 쓸 때, 취업 후 보고서를 작성할 때, 혹은 그냥 누군가에게 메일 한 통을 쓸 때, 이 수업에서 익힌 감각이 불쑥 살아나는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그게 이 수업을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해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