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쓰기의 괴로움

멋쟁이 연구자가 되고 싶고나. 포크레인 연구자가 되고 싶고나.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분명한 연구자 정체성과

수월하게 논문을 써내는,

아니 그보다는

늘 연구하고 있는 것이 있어서

넘치는 할 얘기를 논문으로 써낼 수 있는

그런 멋쨍이연구자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논문을 잘 써내는 것은

어찌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체감 상은 참으로 별개의 일이다.


또 국문학 전공자로서,

직접 창작을 하는 일과

연구를 하는 일도 별개의 일이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균형 있게 생활을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연구에 몰입하는 시간이 자꾸 끊기거나 줄어드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나처럼

온갖 세상 일에 관심이 많고

남편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고

때때로 여행도 가고 밥도 해먹고 장도 봐야하고

청소도 빨래도 각잡아 해야 하는 입장에선

연구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가 많다 (변명이겠지?)


내가 이 분야에서 늘 동경하는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모습은 아니다.

그들은 골몰하고 약간은 외골수적이기도 하고

읽고 말하고 쓰기를 즐겨하며 생활과 연구과

합일된 듯한, 내 상상 속 멋쨍이 연구자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다.


부럽다.


나는 매번 하나의 연구를 논문으로 써낼 때마다

마른 땅 위의 지렁이 같이 온 몸이 꼬이고 숨이 막히는 경험을 한다.

너무나 좋은 연구들을 보고, 공부하고, 하고 싶은 말도 있으면서

찔딱찔딱 글이 써져나갈 때마다 참말 괴롭다.

지금도 4월에 투고해야 하는 논문을 켜놓고

깜빡거리는 커서를 외면하고 요렇게 브런치로 피신을 왔다.


봄이 온 연구실은 이제 더 이상 춥지 않고

바깥은 더운 바람과 시원한 바람이 연이어 불고

정신차리라고 내린 예가체프는 보란듯이 식어가고

멋쨍이 연구자들의 멋진 논문은 읽어도 읽어도 내것은 안 된다.


늘 이랬으니까 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하나의 논문이 완성되고

지나고 보니 꽤 나쁘지 않았구나 싶다는 것.


그래도 과정이 지난하고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아마 저 깊은 곳에 연구의 원천이 되는 샘물이 흘러가고 있을 것이지만

나는 작은 호미로 얕게 땅을 파고 있으니 여기 퐁, 저기 퐁, 조금씩

흘러나오는 물로 밭을 일구려니 힘든 것임도 안다.


좋은 인풋, 깊은 성찰, 거시적 안목과 이해라는 포크레인으로

땅을 퍽퍽 파내들어가야 할 텐데

자잘한 호미들만 잔뜩이다.

자잘한 호미들로 소소하게 정원이나 가꾸고 있는 것이다.

작은 정원도 품이 많이 든다.

나는 개미처럼 바쁘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

선택할 수 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구하여 호미는 호미대로 두고

포크레인을 장만해야지.


포크레인을 모는 연구자가 되는 그날까지,

일단 다시 쓰러 가자.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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