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만들어 본 적 있나요

한국, 일본, 미국, 캐나다 게임회사 이야기

by 손세계

아시아와 북미의 게임 스튜디오를 오고 가며 어느덧 9년 차, 몸 담았던 프로젝트는 네 개를 넘겼다.

단순히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용감하게 업계에 도전했던 패기와, 나를 성장하게 한 실수 그리고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제부터 남겨보는 짧은 소회.




1. 게임을 만든다는 것


누군가 게임은 종합예술이라고 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가 그동안 담당했던 프로젝트는 회사의 펀딩을 넉넉하게 받는 AAA 규모의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말인즉슨,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 투자되는 아트, 음악, 특수효과, 기술 모든 것의 스케일이 매우 크고 복잡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매번 느낀 것은 역시 게임은 소프트웨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화 또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그도 당연할 것이, 비디오 게임은 '엔터테인먼트'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pexels-matilda-wormwood-4101004.jpg 출처: Pexels


게임팀의 직군을 살펴보면 대충은 이렇다. (각 직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추후 포스트에서 다룰 예정이다)


게임 디렉터

게임 디자이너

스토리 작가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 (콘셉트, 캐릭터, 무기, 환경, 조명, Rigging, 3D, UI/UX, 사운드, Technical...)

여러 분야의 엔지니어 (시스템, 네트워크, 게임플레이, 그래픽, 툴, AI...)

작곡가

성우

라이브 운영팀

커뮤니티 운영팀

프로듀서

QA

마케팅, 퍼블리싱, 법률자문팀,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관련 부서들...


같은 회사일지라도 어떤 게임을 만드느냐에 따라 팀 구성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세계관 구축이 중요했던 게임의 경우 스토리 작가가 게임 디렉터와 거의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주기적인 업데이트가 생명인 라이브 게임의 경우 캐릭터 스킨이나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아트팀의 규모가 매우 컸으며 계속 커지는 중이었다.


북미 - 특히 LA - 지역의 게임회사를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실제로 게임업계와 영화업계 간의 이직이 잦기도 하고 더군다나 아트 직군의 경우 각 업계에서 요구하는 스킬이나 쓰이는 툴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당연할 것이, 요즘 CG를 쓰지 않는 영화는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스타워즈 게임을 만들면서 실제로 스타워즈 영화팀에서 일했던 아티스트들이 우리 팀에 합류했을 때의 신기함이란!




2. 프로젝트를 관리한다는 것


회사에서 나의 공식적인 타이틀은 Development Director이지만, 남들이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간단하게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매니지먼트란 말 그대로, 관리를 한다는 뜻이다. 관리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의 사무, 시설이나 물건의 유지·개량 따위의 일, 사람을 통제하고 지휘하며 감독, 사람의 몸이나 동식물 따위를 보살피는 일 등을 맡아 처리하는 것을 말하거나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게임회사에서 프로젝트란 그 팀이 개발하고 있는 게임 타이틀을 말한다. 이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나 검은 사막처럼 끊임없이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일 수도 있고, GTA5나 엘든링처럼 "엔딩"이 있는 게임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관리의 범위가 크게 바뀌기도 한다.



61e882be-2769-40f9-8697-05e223fee039.jpeg 출처: DeepAI로 생성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나의 일과는 우리 팀이 하는 프로젝트가 일정에 맞추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인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앞으로 예상되는 위험요소는 없는지 팀을 "보살피는" 것이다.


이 보살핌은 단순히 업무 티켓에 기록된 작업 시간의 숫자를 보는 것이 아니다. 티켓의 상태가 "On Track"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다. 프로젝트의 업무를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기분과 마음 상태,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프로젝트 관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3. 게임 프로젝트를 관리한다는 것


게임회사의 개성과 창의력, 그리고 자기주장이 넘치는 사람들과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킨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각 부서가 열심히 일한 작업물을 하나로 합쳐 게임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마치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가마 할아범처럼 (심지어 나에게는 두 개뿐인) 손발을 쉴 새 없이 놀려 수 천 개의 부품들을 조립하고 기름칠을 하는 일과가 반복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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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프로젝트, 여섯 개의 팀을 거치면서 나는 매번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것처럼 새로운 프로세스에 적응하고 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해져야 했다. 각 팀마다 구성이 다르고, 사용하는 툴이 다르고, 의사소통 방식이 다르다. 문화가 다르고, 미팅을 하는 주기, 모두가 온라인이 되는 시간대가 다르다.


덕분에 지난 9년 간의 근무가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제야 겨우 익숙해질 때쯤 다른 팀에 투입되어 적응해야 하는 아쉬움이 컸다. 새로운 팀에 조인하자마자 정신없이 몰아치는 업무 때문에 지난 프로젝트에서의 회고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경우도 많다.


한 프로젝트에서 성공적이었던 업무 방식이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9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만들어 본 적 있나요"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하겠다. 대신 이렇게 말 끝을 흐릴 뿐이다. "네, 만들어 보기는 했지만..."


내가 9년 차의 경험치를 잘 쌓아왔는지, 스탯은 잘 찍었는지, 아이템은 잘 모았는지, 사실 아직도 쪼렙인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 요즘, 여기에 남기기 시작한 글들로 부디 많이 늦었지만 밀려버린 회고를 대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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