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수탉은 없고, 오리는 크다.
17화. 진화는 운명의 장난일까?
영화 <500일의 섬머>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남자가 여자를 만났다. 남자는 사랑에 빠졌다. 여자는 그러지 않았다.
대개의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남자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운명을 믿는 독특한 남자 '톰'과, 운명을 절대 믿지 않는 독특한 여자 '섬머'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는 관객들의 정신을 아득히 먼 안드로메다로 날려 보내며 '한 단어'를 각인시키는 장면이 있다.
영화 <500일의 썸머> 최고의 명장면.@www.pinterest.co.krPENIS!!!!!!!
관객들은 섬머의 기행을 보며 당황하고, 키득거리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나직이 'PENIS'를 외쳐 본다. 이렇게나 '톰'을, 그리고 관객들을 당황시키게 하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의 절반이 갖고 있는 것이 'PENIS'다. 하지만 만약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상영되었다면, 관객들은 그다지 즐겁게 웃지 못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수탉은, '그'게 없기 때문이다(수탉은 프랑스의 국조다).
위풍당당한 Le coq - 누가 내 이야기 하나?약 97%의 조류가 체내수정을 통해 번식함에도 불구하고 페니스를 전혀, 또는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조류의 수컷에게 페니스가 없다는 것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연구에 따르면, 닭의 페니스는 발생 초기에는 정상적으로 생성되다가 갑자기 생성이 중단된다.[1] 수탉은 페니스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부만 보유하고 있어서, 자신의 배설강을 암컷의 배설강과 강하게 밀착시켜 정자를 전달한다. 반면에 오리는 대형 페니스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며, 무려 몸길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2]
유전자가 다른 것일까? 연구진은 '대물'로 유명한 오리와(몸길이보다도 길게 자란다.) 닭이 '음경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다수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만 Bmp4라고 하는 특정 단백질이 닭에서만 매우 강하게 발현(생산 및 작동)되어 페니스 생성을 도중에 중단시키는 것을 확인했다.[3] 연구진은 진화 과정에서 Bmp 단백질 발현에 변화가 일어나는 바람에 음경 발달의 마지막 단계에서 닭에게 이런 운명이 찾아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닭은 Bmp4 단백질 발현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적 압력을 받았을까? 진화생물학자인 밥 몽고메리 박사는 닭에게 음경이 사라진 이유를 오늘날의 교미 방식에서 찾는다. 배설강을 마주는 교미 방식은 암수 간의 협동이 필요한 행위인데, 음경이 큰 수탉일수록 강압적 교미를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암탉들이 자연스럽게 음경이 작은 수탉을 선호했을 것이고, 이것이 음경 형태를 결정하는 진화 압력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이다.[4] 반면에 오리를 연구하는 패트리셔 교수는 지난해 9월 오리의 음경이 오늘날과 같이 커진 이유가 '암컷 오리가 본능적으로 수컷의 긴 음경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5] 오리는 특히나 성 선택이 치열하기 때문에 수컷 오리들이 길이로 경쟁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으로 볼 때, 닭과 오리의 성생활에 어떤 운명의 장난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오리를 부러워해야 할까, 닭을 부러워해야 할까? 아니면 '지극히 인간다워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답은 배우자에게 구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1]. McCracken, Kevin G., et al. "Sexual selection: Are ducks impressed by drakes' display?." Nature 413.6852 (2001): 128.
[2]. 동아일보, 2009-10-01, 수탉이 '사정'없이 암탉 올라타는 이유는?
[3]. Herrera, Ana M., et al. "Developmental basis of phallus reduction during bird evolution." Current Biology 23.12 (2013): 1065-1074.
[4]. Nature, 2013-06-06, How the chicken lost its penis
[5]. Brennan, Patricia LR, et al. "Evidence of phenotypic plasticity of penis morphology and delayed reproductive maturation in response to male competition in waterfowl." The Auk 134.4 (2017): 882-8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