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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Jun 19. 2018

장기 매매와 과학
:존엄과 생존 사이

18화. 인간의 존엄성과 장기 이식, 다가온 생명공학의 현재


중국 가면 주는 거 받아먹지 마라. 콩팥 떼 간다.

어린 때에는(그래 봤자 십오 년 전이지만) 이런 우스갯소리를 어머니께 듣곤 했다. 물론 농담삼아 한 말씀이셨겠지만, 한때(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중국을 여행했던 사람들이 겪은 괴담이 9시 뉴스에 소개되고는 했다. 장기밀매를 모티브로 한 영화('아저씨', '공모자들')도 종종 있었다. 특히 임창정 주연의 '공모자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중국으로 김 모 씨와 함께 여행을 떠난 아내가 택시운전사에게 납치당해 몸속의 모든 장기를 적출당했다는 이야기였다.[1][2]

영화 <공모자들> 中


이런 범죄가 끊이지 않는 까닭은
어떻게든 장기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013년 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수술은 1만 건 정도에 불과한 반면 장기가 필요한 사람은 150만 명에 육박한다.[3] 이식의 희망을 안고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건너온 환자들의 '원정 장기이식'도 끊이지 않는다. 장기이식 환자의 60%가 '사형수 장기'를 이용하게 되면서, 하급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한 죄수는 사건이 재조사되기로 결정됐음에도 졸속으로 대학병원에서 사형이 집행되기도 했다.[4]


정부는 장기 매매 규제에 더 관심이 있다.

국내에서는 장기이식을 법으로 규정하여,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는 본인이 동의한 경우에만 적출할 수 있고, 16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골수를 적출하는 경우에는 본인과 부모의 동의를 함께 받아야 함을 명시하여 장기매매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규제에 힘쓰는 반면에 장기이식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을 변화시키고, 장기 기증 대기자들을 살리려는 노력에는 소홀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생명들이 장기 이식에 절박함을 느끼고 있고, 제때 이식을 받지 못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동물에서 떼다 넣는 '이종 장기'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바이오 이종장기 개발사업단은 돼지의 간이나 췌도를 원숭이에 이식하여 8마리가 최대 1년까지 살아남았음을 밝혔다.[5] 세계 최초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WHO(세계 보건기구)의 기준을 충족시켰지만,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 중에 있다. 중국에서는 3년 전부터 임상실험을 승인하여 돼지 각막이 환자들에게 이식되고 있다.


하지만 동물에서 떼다 넣는 방식은 '인간' 대신 '동물'의 존엄성을 떼다 버리는 것과 같아 본질적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문제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한계가 존재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13년 영국 런던의 과학박물관에서는 흥미로운 작품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6] REX의 제작에 사용된 인공심장과 비장, 췌장과 신장은 현재 활발하게 이식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3년 영국 과학박물관에서 발표한 인조인간 'REX'. 인공심장, 비장, 췌장, 신장을 갖췄다.


한편, 세포를 배양하여 만든 장기 유사체(유사 장기)와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만들어지는 인공 장기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요코하마 대학의 타카노리 박사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배양접시 위에서 기능적 간 유사 조직(liver-like tissue)으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포항공과대학교와 서울대학교는 생체 적합성을 지닌 바이오프린팅 소재와, 이것을 덧댈 수 있는 3차원의 '틀'을 개발하는 데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7] 


동아일보, 2014-06-03, 3D 프린터로 뼈-연골-지방 찍어내는 데 성공


긍정적인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공장기의 꿈은 요원하고,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번호표만 뽑아 들고 언제 끝날 지 모를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훌륭한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과학 기술이 우리 몸의 모든 장기를 교체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기까지는 많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오늘날 기다림이 그다지 실속 있는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은 의료인도, 환자도 알고 있다. 사람에서 꺼내든 돼지에서 꺼내든 '살 사람은 살리는'게 옳은 걸까? 어떤 사람의 생명이 돼지, 혹은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무거운 존엄성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과학 기술이 언젠가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어느 쪽도 쉽지 않아 보인다. 












[1]. 오마이뉴스, 2012-08-27, <공모자들>... 슬프게도 더 괴물 같은 현실

[2]. 중앙일보, 2016-07-22, "한국의 대형병원 의사가 장기매매 중개인으로 활동해"

[3]. 한겨레신문, 2013-06-01, 장기이식 환자 60%가 '사형수 장기'이용

[4]. 한겨레신문, 2013-06-12, 당신의 몸도 '판매 중'인가요?

[5]. JTBC, 2018-04-23, 임상시험 문턱서 멈춘 '이종이식'... 관련 법안 국회 체류

[6]. 동아사이언스, 2013-02-07, 100만 달러 인조인간 '렉스' 탄생

[7]. 한국 보건산업진흥원 보고서, 2017, 미래 유망기술 프로그램 - 인공 장기 바이오


















[1]. 아시아경제, 2017-09-12, [장기이식의 세계] 인공장기 개발,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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