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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Jul 03. 2018

<부산행>좀비의 생물학

23화. 생명공학은 어떻게 또 사고를 쳤나

또 생명공학이 한 건 했다. 

생명공학 산업단지에서 뭔가 흘러나온 게 문제가 됐다. 젠장, 현실 속 생명과학은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영화 속에선 한국 생명과학자들이 외계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게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번엔 생명공학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걸까? 이상한 걸 만들려면 어디 무인도에 가서 실험을 할 것이지, 도대체 왜 한반도 한복판에서 실험을 한 건지 모르겠다. 


혹시...너냐?

뭐, 사고야 누가 쳤건 간에... 어쨌든 <부산행>의 끔찍한 사단이 난 건 '우리'탓인 셈이므로, 도대체 '뭐가'흘러나왔는지 한번 영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아니 잠깐만, 1000만 관객을 찍은 지 2년이나 된 영화를 왜 이제야 들여다본거야? 공대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좀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기차에서 흔힐 볼 수 있는 좀비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일단 물리면, 잠시 후 좀비가 된다. 곧바로  변하는 경우도 있고, 아주 천천히 변하는 경우도 있다. 영화 초반부에 다리를 물린 여자가 다리를 줄로 묶어 압박했는데, 좀비가 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볼 때, 물린 부위를 통해 어떤 '물질'이 온 몸으로 전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물질은, 혈관을 통해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른의 심장에서 한 번 펌프질을 할 때마다 70~80cc의 혈액을 보내는데, 인체의 혈액량은 체중의 1/12이다(어른 체중을 70kg으로 봤을 때, 피의 양은 약 6,000cc이다). 따라서 6000/75 = 약 80회 가까이 심장이 펌프질을 했을 때 피가 우리 몸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인간이 평균적으로 분당 평균 심장박동수가 40~50회 이므로, 늦어도 2분 안에 피가 몸을 한 바퀴 돌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이 물질은 우리 몸의 특정 장기에 닿아야 하고, 그건 '뇌'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물린 즉시 감염되는데(목을 물린 여승무원, 가슴을 물린 승객 등), 어떤 사람은 비교적 천천히 감염되기 때문이다(등을 물린 사람, 다리를 물린 사람). 그렇다면 멀쩡한 사람의 언어능력을 0점으로 만들고, 육식동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건 아마 뇌를 점령했기 때문이 아닐까?


기차 내 첫 희생양이었던 투철한 직업정신의 승무원은 뇌로 향하는 대동맥 가운데 목에 있는 '경동맥'을 뜯어먹히자 마자 좀비가 된다.


그렇다면, 좀비에게서 사람으로 전달되는 '그것'은 무엇일까?

좀비 바이러스보다는, 박테리아가 유력하다. 왜냐하면 바이러스는 뇌 세포를 죽게 만들지언정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거나, 신호를 조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뇌의 줄기세포를 죽게 만드는 바이러스가 그 유명한 '지카'다.[2]) 반면에, 박테리아는 기생충처럼 숙주의 행동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연구가 최근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다. 


copyright by ox.ac.uk/news/2018-04-26


영국 옥스퍼드대 카테리나 존슨 연구원과 케빈 포스터 공동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특히 유산군과 비피도박테리움에 속하는 종은 사회적 행동, 불안, 스트레스 및 우울증 같은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령, 많은 종류의 장내 세균이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또는 그들의 전구체)와 동일한 구조를 지닌 화학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거나, 미친듯이 즐겁게 만들거나, 흥분하게 만드는 카페인-세로토닌-아드레날린 등이 신경전달물질의 대표적 사례물질임을 생각해 보면, 좀비의 입이나 내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신경흥분물질을 마구 쏟아내어 한순간에 인간을 좀비로 뒤바꿔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생충과는 달리 좀비의 입속 환경에서도 쉽게 서식할 수 있고, 혈관을 따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3] '좀비 박테리아'가 감염의 원인임이 유력해 보인다.              



비오는 날, 손님이 유난히 드물었던 심야의 노래방에서 <부산행>을 슬쩍 봤다. 중반 무렵부터 슬쩍슬쩍 나오더니 영화가 종반으로 향할 수록 그 악랄함을 마음껏 뽐냈던 양복의 중년아저씨도, 배가 불러도 미모는 여전한 정유미도 인상적이었지만, 초반부터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 군더더기 없는 전개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아, 그리고 앞으로도 영화 속에서 생명공학을 좀 더 못살게 다루어 주시길 바란다. 무관심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





<참고문헌>
[1]. 삼성서울병원 혈관센터 "경동맥 질환의 치료"
[2]. 중앙일보, 2016-08-25, 지카 바이러스 새로운 공격 경로 확인...소뇌와 뇌들보도 손상
[3]. 조선일보, 2017-10-31, 입속 세균, 혈관 돌며 동맥경화-치매 등 전신질환 일으켜
[4]. OXFORD news, 2018-04-26, Can microbes manipulate our minds?

[5]. 메디파나 뉴스, 2017-02-08, '구강 내 세균'혈관까지 침입...'심혈관질환'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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