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들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불균형을 호소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합니다. 주 52시간 근무, 최저임금 인상, 기본소득과 같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적-금전적 보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생활의 재료가 돈과 시간이라고 해서, 돈과 시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꼭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원'들에는 사용설명서가 동봉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넉넉한 돈과 시간만으로 '인간다운 삶'의 이야기를 쓰려하는 것은, 원숭이가 타자기를 마구 두들겨 'ME THINKS IT IS LIKE A WEASEL.(셰익스피어의 희곡 中)'이라는 문장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셰익스피어는 되고, 원숭이는 안 되는 것일까요? ('교육되지 않아서'라는 답변은 잠시 넣어두겠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원숭이에게 개인 교습을 제공한다 해도, 원숭이에게 그와 같은 성취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원숭이와 셰익스피어의 다른 점,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의 실마리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인간에게서 그 차이를 쏙 빼버렸을 때, 인간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를 빼고 다시 집어넣고, 돌연변이를 만드는 방식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곤 하는데, '인간다운 것'을 쏙 빼버린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요.
'인간다운 것', '인간성'이라는 주제는 기존의 인간성 개념이 흔들리고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한 현대 사회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세계대전기의 비인간성을 목격하며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앙드레 말로는 '인간의 조건'에서 신이 사라진 시대,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성'이라는 주제는 뇌과학자들에게도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명과학을 통해 좀비 영화 속 '좀비'들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이되, 인간이지 않게 된 존재이고 실존하되, '본질'은 사라진, 생명이라 말하기도 애매한 개체가 좀비니까요. 그것은 철학적으로도 정의될 수 있으며(행동적 좀비- 외면의 행동만 보아서는 보통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좀비 / 철학적 좀비 - 뇌의 신경세포까지 포함해 모든 관측 가능한 물리적 상태에 있어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좀비), 영화나 게임 속에서도 다양한 상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볼츠만 방정식'으로 유명한 과학자 볼츠만은 "과학자들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가?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현재 해결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고 말했습니다.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귀여운 좀비는 무엇을 빠뜨렸고,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잘 챙기고 있을까요? 과학은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이제 거두절미하고, 이야기를 슬슬 풀어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