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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Nov 24. 2018

인간의 조건: 아버지란 무엇인가

<카고>,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피노키오> 가 전하는 인간의 조건

아내가 좀비에 물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 앤디(마틴 프리먼)는 고민하지 않고 아내를 차에 태운다. 주어진 행동은 48시간. 조금씩 나타나는 변화에 좌절하는 아내를 달래며, 그는 아내를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어딘가에 있다고 알려진 병원을 향한다. 48시간이 흐르고, 좀비로 변한 아내는 앤디를 물었다. 그렇게 그와 그의 딸 로지에게도 48시간이 주어졌다. 구할 수 없을 줄 알면서도, 자신과 딸까지 위험에 빠뜨릴 줄 알면서도 앤디가 아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탓이었다.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그가 좋았다.


영화는 평범한 좀비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대개 좀비 영화에서는 '잃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이미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뭔가를 더 잃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이 생존 본능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지켜야 할 '그 이상의 것'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영화는 끝까지 '인간애'라는 색채를 잃지 않는다. 앤디는 여전히 이별에 익숙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게 좀비 영화를 기대한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기도,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카고>는 좀비 영화의 탈을 쓴 웰메이드 드라마다. 


아버지란 무엇일까? 대개의 생물은 아버지가 없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가시고기나 원숭이, 사자 등 일부 동물들을 제외하면 단순히 정자를 제공하는 개체를 넘어 '아버지'라는 존재, 소임을 다하는 생물은 드물다. 직접적인 신체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어머니'의 존재가 역할과 의미에서 좀 더 생물적이라면, '아버지'는 그 의미가 좀 더 관습적이고 사회적 활동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의 시선에서는 인간의 유아가 다른 종에 비해 대단히 약하고, 그를 보호해야 하는 어머니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하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수적이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우리는 언제 아버지를 필요로 할까? 영화 <카고>가 보호자로서의 '아버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게임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조금 다른 '아버지'를 그려낸다. 게임은 플레이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기계'에 불과한 안드로이드를 인간성을 가진 존재로 변화시켜 나가는가를 보여준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은 지난 5월 발매된 인터랙티브 드라마 형식의 SF 게임으로, 플레이어들에게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게임의 주인공 '마커스'는 인간과 동일한 '주체적 의식'을 갖게 된 안드로이드이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주체적 의식을 갖게 된 로봇들의 지도자가 된 그는 자신에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복종'이라는 본성과 '완전한 자유, 로봇의 인격권'이라는 지도자의 책임 가운데서 우왕좌왕한다. 그는 자기가 모셨고 아버지처럼 따랐던 노(老) 화가를 찾아간다. 그는 마커스에게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믿는다.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라.' 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이것이 '안드로이드 인권 선언'이 발표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언제 아버지를 찾게 될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을 때'였다. 길은 보이지 않고, 외로움에 포기하고 싶을 때 아버지는 항상 먼발치에서 지켜보시고 '괜찮다'라고 말해주었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아버지란 견뎌주는 사람인 것 같다'고도했다. 자식의 불안과 좌절에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믿어주는 사람. 그래서 언젠가 자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존재가 아버지가 아닐까. 피노키오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 주었던 제페토 할아버지 덕분에 마침내 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만화 <피노키오> 에서 피노키오는 모험심에 집을 나가고,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를 찾아 나섰다가 고래에게 먹히고 만다.
하지만 잘못을 뉘우치고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해낸 뒤, 피노키오는 마침내 '인간'이 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간의 조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충분해질 수 없는 존재'다. 중요한 순간마다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항상 턱없이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가장 옳은 판단을 내려야 하니까. 누군가는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필요한 정보의 3% 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고도 했다. 인공지능이 많은 정보와 분명한 알고리즘으로 '정확한 답'을 찾아낸다면, 인간은 '불확실한 선택'을 하고 답으로 만들어간다. '불확실성'은 불안감을 키우고, 실패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 그래서 우리를 믿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거의 평생에 걸쳐 실수하고, 좌절하면서 단단한 존재의식을 만들어 가는 인간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을 이따금 받는다. 사람들은 빠르게 인간을 닮아 가는 인공적 존재들을 두려워하지만, 어쩌면 우리도 인간만이 가지는 빛을 조금씩 잃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기 위해서 우리는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고, 여전히 아버지라는 존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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