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부하 직원은 사람인가, 도구인가
젊고 매력 있는 직장상사와 여비서의 로맨스 이야기가 묘하게 끌린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소설과 웹툰, 이제는 드라마로까지 방영되며 최근 인기다. tvN에서 방영됨에도 불구하고 전 채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잘 나간다'. 여느 드라마와 다름없이 김비서는 아름답고, 오피스룩이 잘 어울리는 능력 있는 여성이다. 젊고 완벽한 직장 상사는 거만하고, 돈 많고, 제멋대로지만 여비서에게만은 옴짝달싹 못한다. 최근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재벌 3세 엘리트인 부회장이 고졸 여비서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안긴다.
1. 특급 회사생활과 노오력
그런데 묘하게도 이 드라마, 어딘지 불쾌하다. 직장 상사는 격무에 시달리는 여비서를 마음대로 결근시키고, 스파에 보내며, 조퇴를 시켜준다.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일이지만 그 정도쯤 그에게는 별 일이 아니다. 김비서가 업무 중에 일본어 실력을 지적받자, 1:1 개인 교습을 시켜준다. 이쯤 되면 대기업의 연봉과 자기계발, 거기에 재벌 3세라는 특급 연줄까지 이 여비서가 회사를 다니는 건지, 재벌 3세 맞춤형 신부수업을 받고 있는 건지 슬슬 의심이 피어오른다.
그래서 드라마는 이 여비서를 노력계의 '슈퍼히어로' 쯤으로 재탄생시켰다. 사장님이 밤늦게 찾아올 줄 어떻게 알았는지, 화장을 지우지도 않고 그 위에 로션을 바른 채 잠자리에 든다(이건 무슨 노력이지?). 노력이라는 설정으로 세상의 모든 불이익(가난, 고졸, 9년간의 살인적 노동)을 떠안은 듯한 고졸 여비서는 스무 살에 대기업 임원의 여비서인 데다, 아름다운 몸매와 패션감각은 기본 옵션이다. 아니 진짜, 이거 노오력하면 돼요?
입사와 자기관리, 자기계발 셋 중 하나라도 그럭저럭 해내기가 어려운 현실인데, 드라마 속 주인공은 모든 게 너무 쉽고, 노력으로 못 해낼 것이 없다. 오늘도 회사에서 고통받고 있는 또래 동기들과 토익학원으로 출근하는 후배들은 그렇게 모두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젊고 매력 있는 직장상사와, 능력 있는 여비서의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상사와 여비서의 사내 비밀 로맨스라는 설정이 왠지 익숙하고 불쾌하고 찝찝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2. 인간 김미소의 존재 이유: 부회장 와이프?
이 드라마는 김미소 비서의 퇴사 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왜 퇴사하고자 했을까? 진실은 본인만 알겠지만, 소설을 참고해보면 스물아홉의 그녀는 누군가의 비서, 누군가의 가족이 아닌 김미소 본인을 찾고자 했다. 드라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현재(16화 중 14화), '인간 김미소'는 어떤 사람인가? 그녀의 정체성은, 직장 상사의 입맛에 맞게 잘 준비된 젊고 능력 있는 신붓감, 딱 거기에 머무른다.
부회장님(박서준)의 로맨틱함에 열광하지만, 출장으로 멀리 떨어진 둘이 영상통화를 하는 시간이 남자 친구에게 가장 편한 시간(낮)이자, 여자 친구에게 가장 불편한 시간(늦은 밤)이라는 데에는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자는 중에 전화했나?'라는 남자 친구의 다정한 말 이전에, 한국의 현지시각을 고려하지 않고 편한 시간에(물론 자신에게만) 영상통화를 거는 자기중심성을 의식하지 못한다. 상사와 부하의 위계질서가 남녀 관계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직장 상사인 애인의 셔츠와 넥타이를 골라주고, 출장하는 그를 위해 속옷과 양말을 캐리어에 대신 담아 쥐여주는 장면은 김비서의 존재 이유가, 애인이기도 한 직장 상사를 빼고는 더 이상 정의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인간 김미소'라는 정체성은 김미소 본인에게조차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 같다. 김미소는 부회장님의 미소(이름을 미소로 설정한 것도 아이러니하다)이자, 맞춤 비서, 첫사랑, 그리고 이제는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드라마는 2화 분량이 남아 있지만, 드라마 원작소설 전개는 그렇다).
3. 폴 사르트르가 관찰한 현대 사회 직장인: 실존과 본질 사이
프랑스 철학자 폴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주장했다. 실존은 '존재하는 것', 본질은 '존재 이유, 목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책상은 미리 정한 설계도에 따라 목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은 그 행동이 순간순간 변화하므로 어떤 행위를 할지, 그 존재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고 본질을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후졌다.
한 인격을 가진 인간이 그 자체로 고유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유의미하고, 그가 없으면 무의미한 '기능, 역할, 도구'로 머무르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킬링타임 수준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29살의 김미소가 잘 나가는 대기업 커리어를 그만두면서까지 찾고 싶었던 '인간 김미소'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도, 보다 정상적인 직장에서의 근무도, 문화생활도 아니고, 재벌 3세 직장 상사와의 결혼식장에서 발견된다. 김미소의 실존은 본질에 앞서는가? 아니면 그저 본질만으로 충분한가?
드라마는 보여주었고,
대중은 '시청률 1위'로 화답하고 있다.
사람들은 '야, 이거 그냥 드라마야! 뭐 이런 일에 힘을 빼?'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개화기 남녀들의 연애를 그린 이광수의 <무정>은 변화하는 조선에서 젊은이들의 의식 변화를 담아내 당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애기야 가자!'로 유명했던 2004년 <파리의 연인>은 백마 탄 왕자님 이야기에 열광하던 시기, 아직 성평등이 자리잡지 않은 시기에 멀쩡한 성인여성을 보호가 필요한 애기 취급하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너도 나도 성평등을 논하는 2018년의 여름에, 역설적으로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시청률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당차고 능력 있는 김비서가 백마 탄 왕자님을 적극적으로 움켜잡은 데서, 흔해 빠진 신데렐라 이야기와 이 드라마의 차이를 찾는다. 하지만 왕자님이 유리구두를 신겨주기만 기다리든, 왕자를 무릎 꿀려 유리구두를 받아내든 그건 본질적인 이슈가 아니라 눈속임이다. 김미소가 아니라 김미남이라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캐릭터는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꼰대 아저씨 아줌마들이 누누이 이야기하는 '결혼 재테크'를 드라마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언제쯤 우리는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30대 커플이 청년 임대주택에서 소박한 꿈을 꾸고, 서로의 꿈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하면서도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를 TV로 만날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