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함을 믿고, 삶이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둔다
가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못 견딜 만치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문득
새벽의 기인 고요함이
숨 막히도록 두려워질 때가
있어
황망히
핸드폰을 켜다, 새벽 3시.
동공을 파고드는 설운 불빛
따스운 소식은
없어
가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못 견딘 만치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한동안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부지런히 유학 생활에 적응하고, 글을 썼다. 학교에 갔다가, 여행도 다녔고, 친구들을 따라 파티를 다니기도 했다. 그러던 오늘 문득 고독감에 휩싸였다. 밤 9시, 평소라면 의욕적으로 어디엔 가 매달려 있었을 시간인데 오늘은 웬 일인지 침대 속으로, 매트리스 안으로 자꾸만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방에 혼자 있기가 두려워, 유튜브를 가만히 틀어 둔 채로 깜박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새벽 3시, 창 밖에는 얼근히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가을 바람에 나뭇가지가 창문 긁는 소리가 있다. 핸드폰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혹시나 클릭해 본 카카오톡 메시지도 알림이 없다.
가끔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외로움 이 지독하게 따라다닌다. 여자친구가 없어서도 아니고, 친구가 없어서도 아니고. 가족이 없어서도 아니다. 나도 이해받고 싶다. 나도 누군가 안아줬으면 좋겠고. 잘하고 있다, 괜찮다, 말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내가 가는 길이 의미있는 길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 그걸 모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고, 그만두고 싶지 않으니까 계속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지만, 가끔 잘 되어 가느냐고 물어봐주고, 잘 풀리지 않을 때 어깨 빌려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외로움 또는 고독이란 어떤 처지에 놓여있더라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즉 외로움이란 혼자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고, 수많은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외로움이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주변환경이나 어떤 객관적인 잣대로 외로움을 잴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단지 멀리 떠나와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외로운 건 멀리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이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누구와 얼마나 가까이 있건, 혼자일 수 있다는 걸 이제 알 것 같다. 웃게 하는 사람도, 울음을 받아 줄 사람도 없어서 즐거워도 양껏 웃지 못하고 슬퍼도 기댈 곳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조언했다. "언제나 제가 바라는 바는, 당신의 고독에 대해서 더 많은 신뢰감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그 외에는 삶이 제 갈 길을 가도록 그냥 맡겨 두십시오. 삶은 어떤 경우에서든 올바른 것입니다." 고독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정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서, 언제나 약간의 영역을 미지의, 고독한 영역으로 남겨 두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해 받기에는 우리 내면의 세계가 점점 깊어지고 복잡해져 버려,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침대를 툭툭 털고 일어나, 읽으려고 아껴 두었던 책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방을 나서 요 앞 공원으로 나갈 것이다. 창밖에는 부슬비가 잦아들었다. 폭신한 흙을 밟을 때마다 찔끔 빗물이 고개를 내민다. 촉촉한 밤 공기가 감싸 안아주었다. 다 괜찮아 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