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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May 02. 2018

녹용즙은 정말 몸에 좋을까?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과학자의 삐딱한 시선

최근 글공부와 전공을 병행하며 받은 스트레스로 잔병치레가 잦아졌다. 다행히 본가에서 녹용을 달여 추출한 즙을 보내 주신 덕분에 건강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녹용즙 한 포(70ml)에는 정말 녹용에서 나온 즙이 몇%나 함유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녹용즙과 같은 건강보조식품 제조과정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었고,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제조자가 만들어 준 대로 구매해야만 하는 녹용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 검색창에 '녹용의 효능'을 검색하면, 위와 같은 홍보성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한의사의 입을 빌려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녹용즙에 대한 효능을 다룬 홍보성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헬스조선 기사에 따르면, "성질이 따듯하고 칼슘이 풍부하다. 조혈작용을 해 뇌로 가는 산소량을 증가시키고 성장호르몬을 증가시켜 뇌 발달, 키 성장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1] 2015년 매일경제 기사에서도 질병예방, 몸 보신, 남성 성기능 향상, 조혈작용 촉진 등 다양한 효능을 언급하고 있다.[2] 이러한 주장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1. 칼슘이 풍부하여 조혈작용을 촉진.
2. 성장판 연골의 성장호르몬 증가.
3. 많은 양의 호르몬이 들어있어 성기능 강화.
4. 신진대사 촉진.

이쯤 되면 녹용을 '만병통치약'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효과가 엄청나다. 그래서 정말로 궁금하다.

녹용의 효과에 대한 이러한 근거들은 입증되었을까?

멋진 사슴뿔을 둘러싼 진실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2010년 리포트에서는, 전통의학 사례 보고들과 임상 관찰을 종합한 결과 생물학적 효과가 관찰되었다고 밝혔다.[3] 그러나 과학적 실험을 기반으로 한 논문이 아니라 임상 사례를 모아놓은 Report에 해당한다는 점, 전통의학 사례들과 임상 관찰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는 점, 그리고 전통의학지인 해당 저널의 성격 등에 선뜻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녹용의 결과를 검증한 논문들을 찾아보았다.

2003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을 무작위로 선발하여 녹용 분말을 먹게 한 뒤 여러 신체능력과 생체신호를 측정한 결과, (1)isokinetic testing 이라는 근력측정법에서는 녹용 분말 섭취의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났지만 isoinertial tesitng 이라는 근력측정법에서는 유의미한 근력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a] 또한 (2)녹용 분말 복용이 적혈구 생성능력(조혈작용), 혹은 적혈구의 산소운반용량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a] 마지막으로 (3)성기능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녹용이 성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한 2003년 자료에서도, 커플을 무작위로 선발한 다음 남성 배우자에게 녹용 추출물을 지속적으로 복용시켜 보았다. 복용 전후 남성의 성기능 향상에 대해 여성 파트너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는 응답들이 보고되었다.[b]

고개 숙인 남성에게, 과연 녹용즙이 필요할까?

물론 녹용의 효과를 완전히 부정하는 연구 결과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녹용의 효능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2013년 JEP지에 기고된 논문은 녹용의 효능에 대한 30년간 발표된 중국 내 연구 결과들을 정리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녹용의 효능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연구 결과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생쥐에게 녹용즙을 매일 6g/kg으로 주입하여 효과를 확인했다는[5] 연구 결과(70kg의 성인 남성은 하루에 400ml이상의 녹용즙을 매일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는 의미)나, 생명체를 대상으로 실험(in-vivo research)하는 대신 배양한 세포에 실험(in-vitro research)하여 효과를 확인하는 등[6], 녹용의 효능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연구 결과들도 상당수 발견되었다. 또한, 녹용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들은 녹용즙 복용이 유발하는 신체적 변화를 관찰하였을 뿐, 녹용즙의 체내 작용기전(mechanism)은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녹용이 어떤 방식(mechanism)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다.

효과가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녹용즙은 오늘날 70ml 30팩에 100,000원이라는 상당히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10ml당 62원에 거래되는 값싼 제품부터 10ml당 471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제품까지 가격도, 품질도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동네 보양원이나 한의원의 경우 제조과정, 원료, 완제품의 품질을 온전히 제조자 개인의 양심에 의존하고 있을 만큼 한약, 또는 건강 보조식품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식품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약을 먹으며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항상 건강 유지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