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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곰돌이 Apr 27. 2018

흡연은 수명과 관련 없다?

때때로 정말 그렇다. 유전자 덕분에.

넌 담배 피우지 마라.


우리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씀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든, 피우지 않는 사람이든 담배가 암 발병률을 높이거나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등 무병장수의 걸림돌이 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정부에서도 국민들의 금연을 권장하고, 금연을 돕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들 또한 충분하다. [1] 2004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흡연이 모든 예외적인 주제를 제외하고는 오래 사는 것과 양립할 수 없고, 설령 오래 살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을 감소시킨다." 고 입증했다. 최근까지도 흡연과 관련된 연구들은 흡연이 유해하다는 것을 전제로, 흡연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공익광고에서도 흡연의 유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때론 수십 년간 흡연을 해 왔음에도 90세 너머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2]


 흡연이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를 한참 비껴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 놀라워서, 담배 회사들의 교활한 언론플레이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가령, 그 사람들이 피우는 담배는 독성이 강한 담배가 아니라거나, 담배를 오랫동안 아주 가끔씩 피우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행운을 과시하기 위해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허풍을 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의심은 조금 접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때로는 정말로 흡연과 수명 사이에 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3] Morgan E.Levine 박사는 2013년 연구 결과에서, 다른 그룹과는 달리 80세 이상 그룹에서는 만성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사망률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Morgan은  미국의 50 세 이상 성인 5,423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3 차 전국 건강 영양 조사 (NHANES III)의 자료를 통해, 연령대에 관계없이 사망률과 생리 기능 지표에서 흡연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Morgan은 사람들을 나이, 흡연상태, 사망률을 고려한 비례 위험 모델을 통해 자료를 분석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연령에서 흡연자들의 사망률이 더 높았지만, 80세 이상인 사람들은 흡연 여부와 사망률 간에 유의미한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았음을 밝혀냈다. [4] 또한 80세 이상 그룹에서는 C-reactive 단백질, 혈중 백혈구 농도, HDL 콜레스테롤 수치와 같은 건강 지표에서도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건강하게 담배를 피우는 노하우라도 있는 걸까?


이러한 연구결과가 흥미로운 점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흡연자일수록 젊은 흡연자보다 더 많은  담배를 피웠을 것이기 때문에 생존율이 더욱 떨어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행운은 나이와 관련 있는 것일까? 행운의 핵심은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에 있을 것 같다. Morgan 박사는 2015년에 진행한 또 다른 연구 결과에서 흡연과 같은 스트레스에 저항성을 갖고, 노화 현상이나 암,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간의 유전적 변이(SNP polymorphism set)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5]


SNP 란,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유전자 안에 사람마다 약간씩 다른 염기서열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같은 유전자에서 만든 단백질도 동일한 기능을 더 잘하거나 못할 수 있다.


해당 연구에서 Morgan 박사는 흡연자 가운데 80세 이상 장기 생존자와 52~69세의 흡연자의 유전자 구성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실제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기능적으로 얽혀 있는 유전자들 가운데 몇몇은 215개의 단일염기 다형성(SNP)을 가진다는 것을 밝혔다. 말하자면, 유전자가 본래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남들과 약간 다른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생존한 흡연자일수록, 갖고 있는 유전자에 이 215개 단일염기 다형성(SNP)이 더 많이 포함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고 밝혔다.


요약하자면, 흡연은 일반적으로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주요한 요인이지만, 80세 이상인 사람들의 그룹에서는 흡연과 수명 사이의 관계가 없었다. 그들의 유전자가 원래 기능을 잃어버리지 않는 수준에서 약간씩 다른 특징을 갖는데, 이것이 다양한 스트레스(흡연을 포함한)에 신체가 저항성을 가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때로는, 정말로 "흡연과 수명 사이에 관계가 없다." 가 맞는 말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담배 마음껏 피울 수 있게 해달라는 거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유해물질 덩어리인 데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이미 앗아갔거나 혹은 앗아가는, 모두가 그 악랄함에 대해 동의하는 '담배'조차도 넘볼 수 없었던 어르신들, 그분들의 유전자에 숨겨져 있는 비밀이 우리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1]. Tafaro, L., et al. "Smoking and longevity: an incompatible binomial?." Archives of gerontology and geriatrics. Supplement 9 (2004): 425-430.


[2].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40627.html 


[3]. http://hqcenter.snu.ac.kr/archives/30975 고령까지 장수하는 흡연자의 유전적 특징 찾았다.


[4]. Levine, Morgan, and Eileen Crimmins. "Not all smokers die young: a model for hidden heterogeneity within the human population." PloS one 9.2 (2014): e87403.


[5]. Levine, Morgan E., and Eileen M. Crimmins. "A genetic network associated with stress resistance, longevity, and cancer in humans."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 Biomedical Sciences and Medical Sciences 71.6 (2015): 70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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