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할 땐 놓고 가세요
지난해 겨울, 청와대에서 고산병 예방을 위해 비아그라를 사들인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비아그라는 히말라야 등 고산지대를 여행하는 트레커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산증세 예방 및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됐으며, 커뮤니티에서도 비아그라를 권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비아그라는 고산병에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부작용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으므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청와대마저 예산을 낭비하게 만든 비아그라의 진실은 무엇일까?
비아그라에 대해 트레커들이 가진 대표적인 오해는, 비아그라의 혈관 확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저(低)산소 상태를 겪고 있을 때 발생하는 증세(고산병)를 완화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아그라와 고산병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산병을 알아야 한다. 고산병은 해발 3,000m 이상 고지대로 올라갔을 때, 공기 중의 산소량 부족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질환으로,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급성 고산병’, ‘고소 폐부종’, ‘고소 뇌부종’이며, 때에 따라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급성 고산병’과 ‘고소 뇌부종’은, 저산소 혈증이 뇌혈관 확장, 교감신경 활성화를 촉진하여 일시적으로 어지러움을 느끼게 되는 질환이다. 반면에 ‘고소 폐부종’은 뇌혈관 수축으로 호흡 곤란을 경험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혈관 확장 촉진제인 비아그라를 사용했을 때 ‘이론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경우는 뇌혈관 수축이 원인인 ‘고소 폐부종’을 겪을 때뿐이며, 만약 뇌혈관 확장을 촉진하는 ‘고소 폐부종’이나 ‘고소 뇌부종’을 겪는 트레커가 비아그라를 복용할 경우 증세를 악화시켜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라는 말을 강조하는 까닭은, 이마저도 실제 실험 결과들이 서로 달라 학계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연구에서는, 62명 가운데 절반은 하루 3번 50mg의 비아그라를 복용시켰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위약을 복용시킨 다음, 해발 3,650m에서 4일간 적응 후 해발 5,200m로 올라가 1주일간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비아그라를 복용한 그룹과 위약을 복용한 그룹이 혈압이나 혈중 산소량에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1] 2014년에 진행된 연구에서는 '고소 폐부종'을 앓는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2] 모든 연구 결과를 맹신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비아그라와 고산병 사이의 관계가 생각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산병 예방을 위해 비아그라를 미리 복용하는 것은 효과가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2016년 논문에 따르면, 일본 후지산(3,776m)등산 이후 폐동맥 고혈압 증상이 발생한 25명의 환자를 연구한 결과 비아그라의 예방적 사용은 효과가 없었다.[3] 이러한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고산지대에서 비아그라를 복용한 많은 사람이 석연치 않은 반응을 내놓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1) 이론적으로 비아그라의 긍정적인 효능을 경험할 수 있는 경우는 제한적이며 (2) 실제 연구 결과들에서도 비아그라의 긍정적인 효능이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았다. (3) 실제 비아그라를 사용한 사람들이나 전문 산악인들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고산 트레킹을 준비할 때에는 비아그라 대신 다이아막스, 아스피린, 타이레놀을 챙기는 것이 안전하다.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정복했고, 에베레스트 산을 홀로 무산소 등정한 라인홀트 메스너는 히말라야를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라고 했다. 마력처럼 산을 향하는 모든 산악인, 트레커들이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안전하게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문헌>
[1]
Bates, Matthew GD, et al. "Sildenafil citrate for the prevention of high altitude hypoxic pulmonary hypertension: double blind, randomized, placebo-controlled trial." High altitude medicine & biology 12.3 (2011): 207-214.
[2]
Xu, Y., Liu, Y., Liu, J., & Qian, G. (2014). Meta-analysis of clinical efficacy of sildenafil, a phosphodiesterase type-5 inhibitor on high altitude hypoxia and its complications. High altitude medicine & biology, 15(1), 46-51.
[3]
Iwase, M., Itou, Y., Takada, K., Shiino, K., Kato, Y., & Ozaki, Y. (2016). Altitude‐Induced Pulmonary Hypertension on One‐Day Rapid Ascent of Mount Fuji: Incidence and Therapeutic Effects of Sildenafil. Echocardiography, 33(6), 838-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