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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Mar 14. 2023

순례길 TIP3 : 순례길에서 식사하기

번외편 3

“나는 8kg가 빠졌어!”


여정의 후반부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 체중 감량을 말히는 증언자가 속출했다. 함께 걸었던 루디 아저씨나, 메르카이도로에서 만났던 크리스티안 아저씨, 산티아고 여행 후 포르토에서 다시 만난 알리샤도 살이 많이 삐졌다고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1kg의 체중 감량도 경험하지 못했다. 10kg가 넘는 가방을 메고 매일 25~30km의 길을 걸었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잘 먹어서 일 것이다. 까미노에서도 식사를 챙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나는 이런 방법들로 식사를 챙겨 먹었다.

<아침>

만들어 먹기

바에 들러 먹기

알베르게에서 제공되는 조식 먹기


보통 하루의 걷기를 마치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씻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 동네 구경을 나갔다. 유명한 유적을 보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날 저녁 식사나 다음 날 아침 조식을 할 만한 곳이 있는지도 함께 살펴봤다. 그리고 슈퍼나 식료품점애 들러 장을 봤다. 내기 직접 차려먹어야 하는 경우, 아침 메뉴로는 과일과 요거트, 커피와 약간의 빵을 먹을 때가 많았다. 오전 식사를 할만한 가게가 았을 때는 종종 데사유노 세트를 시켜 먹었다. 대부분 커피+오렌지 주스+빵+요거트 등으로 세트가 구성되었다. 여행 후반부에 함께 걸었던 루디 아저씨는 아침 메뉴에 포함된 오렌지주스를 참 좋아하셔서 농담으로, 바의 오렌지 주스 착즙기를 사야겠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커피와 주스를 동시에 먹는 문화가 꽤나 신선했다.


<점심>

아침에 준비한 도시락 먹기

바에 들러 먹기


점심 식사는 11시~12시 사이 들르게 되는 마을의 바에서 해결했다. 나는 스페인식 또띨라를 매우 좋아해서, 또띨라 또는 또띨라가 들어간 보카디요와 카페 콘 레체를 먹었다. 점심을 먹을 때 특히 중요했던 것은 키페 콘 레체 한 잔이었는데, 늘 뜨거운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셨다.

한 번은 휴식을 위해 들른 바에서 네 분쯤 되는 여자분들과 대화를 하다가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들 평소에는 단 커피를 먹지 않지만 까미노에서는 꼭 커피에 설탕을 넣어 먹는다고 했다. 한 잔의 카페 콘 레체에 거친 질감의 설탕을 쏟아부으면 설탕의 일부는 우유 거품 위에 남고, 나머지는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설탕이 아직 남아있는 커피의 윗부분을 마실 때 달콤함을 한 번 맛보고, 고소하고 씁쓸한 라떼를 다 마신 뒤 바닥에 아직 녹지 않은 설탕이 내는 단맛을 한번 더 음미하며 마무리하는 커피 타임은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만약 다음 날 이동하며 바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땐, 미리 마련해두었던 식자재로 보카디요를 만들었다. 보통은 바개트나 크로와상에 치즈 한 종류, 하몽과 초리조 중 하나를 선택해 간단하게 도시락을 쌌고 사과 등의 소지하기 편안한 과일을 씻어 곁들여 먹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도시락이지만, 오래 걸은 후 길바닥이나, 쉴만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 그렇게 꿀맛이었다. 등산할 때 땀을 흠뻑 흘리고 산 정상부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던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저녁>

알베르게에서 제공되는 음식

레스토랑에서 해결

직접 만들어 먹기


저녁을 판매하는 알베르게를 방문할 때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그곳에서 음식을 해결했다. 이미 지쳐서 다른 레스토랑을 찾을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방도 없고, 저녁을 판매하지 않는 알베르게애 머물 땐 마을의 식당을 이용했다. 보통은 <메뉴 델 디아>또는 <메뉴 델 페레그리노>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두 가지 모두 3가지 코스로 구성된 세트 메뉴였기 때문에 단품보다는 되도록 이 세트 메뉴를 이용하곤 했다.


이 세트메뉴의 3가지 코스는 전체요리, 메인 요리, 디저트로 구성되었다. 먼저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전체요리(Primar plate)에는 대부분 샐러드, 스파게티, 수프의 옵션이 있었다. 나는 이 첫 번째 단계에 스파게티가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했는데 한국에서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메인 메뉴가 되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고 난 뒤 매우 허기가 질 때는 샐러드 대신 스파게티를 시켜먹기도 했다. 두 번째로 나오는 메인 요리(segundo plato)로는 생선이나 육류를 익혀서 조리한 요리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했다. 이 두 번째 요리를 먹을 때도 내 기준에서는 정말 특이해(?) 보이는 요리를 종종 만났다. ‘로스트 치킨’을 시켰는데 큰 닭다리 하나가 튀긴 감자와 서빙되어 나오거나, 그릴드 피시를 시켰는데 내 손바닥보다 더 작은 생선 세 마리가 감자 요리와 함께 쟁반에 놓여 있는 식이었다. 커다란 닭다리 하나를, 또는 백반 정식에 곁들여 먹던 구운 생선이 그 자체로 하나의 플레이트로 제공되는 일은 내게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런 밥상을 받을 때면, 한 번에 여러 가지 요리가 가득하게 나오는 한국식 밥상이 그리워졌다.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디저트(postres)를 내어 주었다. 보통은 푸딩이나 케이크, 요거트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 먹었다.


세 가지 코스를 먹을 때면 자주 메뉴에 포함된 와인과 함께 먹었다. 스페인은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의 3대 와인 산지라고 하는데, 그 말이 진짜라는 사실을 저녁 식사를 하며 체감했다. 레스토랑에서 코스 메뉴를 먹을 땐 거의 그날 함께 걸고, 알베르게에도 함께 머물게 된 이들과 함께 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와인을 마시고 잔을 부딪히는 일은 일싱과도 같았다. 내가 고된 산티아고를 여행하면서도 살이 빠지지 않은 건, 늘 실컷 걸은 뒤 먹었던 이 푸짐한 저녁식사 때문 인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의 식사가 스페인의 식사 문화를 경험한다는 차원에서 좋았다면, 숙소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또 그 나름으로의 즐거움을 동반했다. 우선 힘께 돈을 모아 식재료를 샀기 때문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고, 서로 도와가며 요리를 했기 때문에 그날 처음 만난 순례자들도 금세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가장 자주 만들어 먹었던 요리는 샐러드와 파스타였다. 하루는 이탈리아에서 온 안드레아가 만들어 준 토마토 참치 파스타를 얻어먹었는데, ‘이탈리아인이 만든 파스타라니!’하고 기대하며 음식이 다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인이라고 해도 누구나 다 된장찌개를 잘 끓일 수 있는 건 아닌데, 나는 그가 스파게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파스타에 큰 기대를 가졌었다. 다행히도 그 파스타는 꽤 맛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 파스타면을 삶은 뒤 참치 캔을 까서 면과 함께 자주 섞어 먹었다는 말을 했는데, 그 요리는 한국의 간장 계란밥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순례길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외국 요리에 대한 나의 편견이 많이 깨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파스타’였다. 한국의 계란 간장밥처럼도 먹고, 정확한 레시피로 정성 들여 만들어 먹기도 하는 것이 ‘파스타’ 구나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나도 혼자 파스타를 제법 자주 만들어 먹고 있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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