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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Apr 04. 2023

순례길 TIP 4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동물들

번외편 4


길을 걸으며 정말 많은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났다.

나는 동물과 바다 생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동물원의 행복권을 위해 도시의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순례길 위의 마을이나 산 길에서 동물을 만나면 가까운 거리에서  오래 바라보거나,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곤 했다.  


# 해피카우

까미노를 걸으며 자주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들을 만났다.

나는 이 행복해 보이는 소들을 ‘해피 카우’라고 불렀는데, 날씨 좋은 날 넓은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는 모습이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검은색 소, 황색 소도 만났지만, 특히 젖소를 자주 만났다. 몬테로소로 가는 길에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젖소 떼 뒤를 가족들과 함께 따라가는 꼬마를 만났는데 그 큰 소를 무서워하지 않고 친근히 대하던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을에서 만난 젖소들은 매우 사람 친화적이었는데, 심지어는 휴대폰 카메라로 자신을 찍는 내게 다가와 내 휴대폰과 손을 핥고 지나갔다.


#인상파_양

포세바돈으로 향하는 산 길을 오르던 중 ‘아타푸에르카’에서는

백 마리는 족히 넘는 양 떼와 양 떼를 모는 양치기, 그리고 양몰이 개를 만났다.

양들은 산속에서 풀을 뜯고 있었는데 표정이 매우 험상궂어서 손이 닿는 거리까지

다가가지는 못하고 한참 풀 뜯는 모습을 구경만 했다.

양털의 푹신한 느낌 때문에  양의 이미지가 둥글고 순하게 표현되기도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양은 생각보다 더 무섭게 생겼다.


#난봉꾼_오리

사리아에서 머물렀던 알베르게 주변에는 오리가 돌아다녔다. 사리아는 산티아고에서 들른 도시들 중에서도

도시의 규모가 제법 큰 축에 속했는데, 그런 곳에서 오리가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 주위를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엔 이 오리들 때문에 진땀을 빼기도 했는데

우리 일행을 본 거위들이 꽥 소리를 내며 날개를 펴고 공격적으로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하천에서 청둥오리를 자주 볼 수 있다면,  스페인 북부 마을에 근접한  강가나 호수에서는 오리와 더불어 거위, 그리고 백조까지도 만나볼 수 있었다.


#느긋한_청설모

까미노를 걸으며 거쳐간 도시들 중 살아보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는다면, 단연 ‘로그로뇨’라고 답할 것이다. 물론 그 밖에도 머물고 싶은 곳은 정말 많았지만 로그로뇨는 중세의 느낌이 나는 구시가지와, 잘 정비된 신시가지가 잘 어우러진 도시였고, 도시 가까이 걷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이 있어 좋았다. 전 날 밤 순례자들과 떠들썩하게 파티를 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 로그로뇨를 떠나왔던 날, 복잡한 심경으로 걷던 나를 위로해줬던 것도 자연이었다. 도시를 빠져나오는 길에서 마주한 잔잔한 호수에는 백조와 오리가 물안개 핀 호수에서 고요한 아침 시간을 만끽하고 았었다. 호수를 지난 뒤에는 잘 조성된 공원과 나무가 우거진 산책로가 나왔는데 이곳에서는 청설모를 만났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길이라 그랬는지 도토리를 주워 먹던 청설모는 나를 보고도 멀리 도망치지 않고 도토리에만 집중했는데,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그 작은 동물이 어이없고 귀여워 청설모를 구경하는 동안은 잠시 마음의 시름을 덜 수 있었다.


#도도한_개들

작은 마을에 들어설 때면 종종 마을의 개들을 만났다. 목줄도 없이 마을을 자유롭게 활보하거나, 길 한가운데 한가롭게 누워 사람들을 구경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포르토마린에서 만났던 황토색의 개 한 마리는 길을 지나가는 나와 루디 아저씨를 자리에 서서 가만히 바라봤는데 마치 내가 그 개의 구경거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개의 멍한 표정이 너무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까미노에서 만났던 개들은 대부분 자유로워 보였고(목줄을 한 개를 만난 적이 없다,), 느긋해 보였으며 사람에게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짖지도 않았지만,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법 또한 없었다.



이밖에도 드 넓은 평야지대에서는 높이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야생의 새들이 혼자 걷는 여행자의 고독을 덜어 주었고, 가구수가 적은 작은 마을에서는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 다가오는 순한 길고양이들도 종종 마주쳤다. 혼자 고독하게 길을 걷거나, 너무 힘들어서 결국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버렸을 때, 어김없이 마주하는 이 뜻밖의 동물들은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큰 위안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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