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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진 Mar 16. 2021

나의 럭셔리 버스

지금 우울하다면 읽어볼 것.

'숙면'은 나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다. 그런 내가 요 며칠 잠을 설쳐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그러니 그 피곤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작한 오늘은 설상가상 우리 회사 제품의 네이버 쇼핑 라이브를 진행하는 날이었다.  


나는 작은 규모의 생활용품(이라 쓰고, 아직-유아용품회사라 읽는다) 회사의 마케터다. 덕분에 '모바일 쇼핑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려면, 기획/ 구성/ 홍보/ 현장 운영 및 정리 등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한다. 1시간의 방송을 위해 방송 전/중/후까지 꾸준히 챙겨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그동안 진행해 왔던 2인 방송이 아니라, '1인 쇼호스트' 형태로 진행하게 되어 더욱 예민해진 상태였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방송날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더불어 어젯밤도 역시 깊게 자지 못해 출근하기가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나는 프로 출근러(?)라, 기계적으로 일어나 씻고 출근길에 나섰다. 이렇게 기분이 안좋은 날- 나의 처방전은 그 기분에 딱 맞는 음악을 먹어주는 일.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음악도 축 쳐진 기분을 업시켜주지 못했다. 음악을 수차례 바꾸면서도 한 곡을 1분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극약 처방을 내렸다. 바로 원모어 찬스의 '럭셔리 버스'를 듣는 일.


찌는 듯한 어느 여름 남인도에서

내가 애써 예약해놓은 멋진 럭셔리 버스

하지만 그곳에 갔을 때 내가 만난 건

사람 염소 닭이 같이 타는 낡아 빠진 시골버스


나의 황당한 표정 화가 난 모습 뒤로

어느 인도 할머니는 돈이 없어 내려야 했어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운 일이

누군가에게 럭셔리함

그래 내가 탄 버스 럭셔리 버스 맞았어


럭셔리 버스 럭셔리 버스 부우웅

우리가 함께 타고 가는 멋진 순간들

럭셔리 버스 럭셔리 버스 부우웅

힘든 인생은 없어 럭셔리 한 경험만 있을 뿐


이 주옥같은 가사의 노래를 듣다가 보면 절로 '감사'의 이유들을 떠올리는 나를 만나게 된다.

'사람 염소 닭이 같이 타는 낡아 빠진 시골버스- 인도 할머니는 돈이 없어 내려야 했어.

누군가에겐 실망스런일이, 누군가에겐 럭셔리함...'이런 가사를 듣다가 보면 내가 가진 것들의 좋은 면이 보이기 시작해서인 것 같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효과가 있었다.


'그래 실업률도 높고, 특히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이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과거의 힘들었던 모든 크고 작은 경험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데, 오늘의 라방도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줄 거야.'


'실력을 다져놓으면 더 좋은 럭셔리 버스를 타고 싶을 때, 그 버스를 탈지 말지 결정하는 선택권을 내가 쥐게 될 거야.'


그런 생각들이 절로 피어오르며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 것. 덕분에 지하철에서 내려서 회사까지 걷는 동안 마음도 꽤나 밝아져 있었고, 실제 방송도 팀원들과 함께 차근차근 잘 진행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찌는듯한 여름에 남인도에 가서 버스를 예약했다'면 사실 그것은 감사할 부분이 많은 상황일 것이다. 비싼 돈 들여 '인도'에 갈 만큼 내게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는 말이고, 심지어 현지인들은 쉽게 타기 어려운 버스를 타고 '생업'이 아니라 '여행'을 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내가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는 많은 것들에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느 날 아침,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이 너무나도 짜증 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면 이 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게 특효약인 것처럼 오늘의 내 하루가, 지금의 내 상황이 못 견디게 싫은 당신에게도 꼭 도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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