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쓰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리티 시리즈 더 보이프렌드를 보고 있다. 나는 딱히 게이나 레즈비언처럼 소수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의견’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예컨대 LGBT 퍼레이드를 한다고 해도, ‘아, 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 받아들이는,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에 가까웠다.
보통은 내게 연애 리얼리티 쇼는 그리 매력적인 콘텐츠가 아니었다. ‘나는 솔로’ 같은 프로그램은 너무 외모 중심, 그리고 ‘섬’이라는 비일상적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매력 어필 쇼처럼 느껴졌다. ‘진짜 연애나 관계 맺기가 저런 걸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거부감이 들었다.
물론 나도 안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나로서, 그 안의 고백과 감정 변화들이 단지 ‘극화된 장치’만은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인위적인 환경 속에서 선남선녀들이 매력어필을 하고 관계를 맺고 금방 허무는 모습은 영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더 보이프렌드라는 일본 게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썸네일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며 영상 하나하나를 자연스럽게 이어 보게 되었다.
계속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편안함’이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도 멋진 외모의 출연자들은 등장한다. 하지만 이성 간 연애 리얼리티와 달리, 남성 출연자들이 서로를 탐색하고, 알아가고, 우정이 되었다가 연애감정으로 발전하는 모든 과정은 오히려 잔잔한 일본 로맨스 영화나 가족 영화에 가까웠다.
초기 몇 회에서는 (시청률을 위한 선택인지) 근육질 몸매가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린룸’이라는 공간에서 커피차를 함께 운영하고, 한 집에서 오랜 시간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의 모습은 억지스러움보다는 ‘평화로운 공존’에 가까웠다. (편집의 기술일지도 모르지만!)
출연자들은 스스럼없이 자기 마음을 꺼내 보였고, 감정을 솔직하게 나눴다. 시간이 흐르며 어떤 관계는 사랑으로, 또 어떤 관계는 우정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점은, 그 누구도 외모나 재력, 화려한 타이틀 같은 외적 조건으로 자신을 어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바람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상대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졌다.
동성 간의 사랑은 이성 간의 사랑과 얼마나 다를까? 육체적인 접촉을 제외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다른 걸까?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남성 연인 사이의 스킨십도 어느새 그냥 ‘그럴 수 있는’ 자연스러운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그런 장면이 지탄받아야 할 이유가 정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여전히 제삼자의 입장이다. 마치 ‘기후 문제’를 이야기하듯, 아니 사실은 기후 문제가 내게 더 가까운 주제이긴 하다. 그래서 LGBT에 대해 내 입장을 선명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 그들의 현실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콘텐츠를 계기로, 왜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지 더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졌다. 단지 ‘다수’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외에 정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래야 나도 동성연애를 둘러싼 사회적 아젠다들에 댜한 내 입장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