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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고래 Oct 31. 2021

야간 비행을 스윗하게 만든 기장님의 한 마디

오늘의 비행이 특별했던 이유

가을을 맞아 제주에 다녀왔다. 2박 3일 억새와 바다를 실컷 보며 놀다가 3일째 되는 날 밤 8:00시 비행기를 탔다.


전날 숙소의 소음으로 늦게 잠들었고, 며칠을 높아진 텐션으로 여기저기 바삐 돌아다닌 탓에 비행기를 탈 즈음엔 너무 피곤해서 거의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슬며시 깨어났을 때 기내 방송 소리가 들렸다.


“지금쯤이면 제가 누군지 다들 아실 텐데요, 기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울에 가까워지고 있는데요. 저는 천안- 수원- 인천 - 마곡을 거쳐 한강을 따라 돌며 천천히 김포 공항에 착륙을 할 예정입니다.(대충 일런 내용으로 루트를 알려주셨으나… 정확하진 않음) 지금부터 알려드린 경로를 생각하며 창 밖을 보시면 비행이 좀 더 즐겁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름이 조금 낀 날씨지만 사이사이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바빠서 번역은 어렵습니다. 옆에 번역 필요한 분 있다면, 알아서 번역해주세요(농담조).”


평소 고도나 날씨 등을 읊어주는 기장님들의 다소 사무적인 말투가 아니었다. 기장님의 말투는 친절하고,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말투였다. 그 캐주얼한 말투와 내용이 비몽사몽한 내 귀에 쏙쏙 들어와 눈을 뜨고 창 밖을 응시하게 했다.


보통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데 오늘은 늦게 탑승권을 발급받아, 나란히 세 좌석 중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내 자리에서는 창 밖이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사력(?)을 다해 야경을 구경했다. (아마 창가에 앉은 분이 부담스러우셨을지도 모르겠다^^;)


기장님도 그저 같은 항로를 반복적으로 운전하며, 운전 그 자체만 신경 쓰며 운행할 수 있지만 이 분은 승객들이 보다 즐겁게 여행할만한 요소를 남겨주려고 마이크를 드셨다는 점이 신선했다. 운전을 하면서 여행객들이 이 비행에 관심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 멘트를 해주시는 바람에 승객들도 보다 즐거운 비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매뉴얼이 있고, 매뉴얼을 벗어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런 ‘필수 요건’을 충족시키되 개성을 업무에 투입하면 일을 하는 사람도, 그 덕을 보는 사람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내 일을 너무 주어진대로만 하지 않았는지, 내가 즐겁게 할 만한 요소는 없는지 생각해보겠다 다짐했다.


나는 요즘 국내에선 제주에어를 이용하는데,  짧은 경험이 다음 비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다음에도  제주에어를 타야겠다.


그날 탑승한 비행기! 제주에어 기장님, 좋은 비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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