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왈도 아저씨와의 동행

#13 Cizur Menor ▶︎ Puente La Reina

by 박고래

시수르 메노르의 알베르게에는 총 네명의 여행자가 함께 묵었다. 세 분은 모두 처음 보는 분들로, 한 분은 프랑스인 아저씨, 한 분은 스페인인 아저씨, 그리고 영국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영어를 쓰시는 아주머니를 제외하면 나는 다른 두 분과 대화가 불가능 했는데, 더구나 세 분 모두 개인적으로 저녁을 해결하는 분위기라 나도 혼자 저녁 식사를 했다. 그날은 걷기 시작한 후로 가장 고독한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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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세 분 모두 아침 일직 알베르게를 떠나셨기 때문에 나는 홀로 남겨져 텅 빈 알베르게에서 천천히 아침 식사를 했다. 따뜻한 스프와 초리조(chorizo)를 넣은 보카디요를 만들어 먹고, 커피도 한잔 마셨다. 그리고 알베르게를 빠져나와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잘 정돈된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자 너른 벌판이 나왔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 아직 어둑한 하늘에는 두터운 구름이 가득했지만, 적당히 젖어 촉촉한 공기는 아침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침 식사 시간까지만해도 비가 왔지만, 걷기 시작한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개어 걷기에도 좋은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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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쯤 걸었을까? 멀리 한 사람의 뒷 모습이 보였다. ‘혼자라도 좋다!’고 생각한 여행이지만 텅 빈 길을 혼자 걷다가 타인을 발견하면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옳은 경로로 잘 걷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혼자보다는 소리쳐 들릴 거리에 사람이 있는 것이 조금 더 안전할 것 같아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걷던 사람과는 점차 거리가 좁혀졌다. 큰 배낭을 멘 그 사람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며 앞서기도, 뒤서기도 하며 한참을 각자 걸었다. 그러다 푸엔테 데 라이나(Puente La Reina)로 가는 경로에 있는 페르돈 봉(Alto de Perdón)의 철로 만든 순례자상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그가 언덕 위에서 숨을 고르며 페르돈 봉의 순례자 상과 셀카를 찍었는데, 너른 풍경과 그의 모습이 셀카에 다 담기지 않아 곤란해 하는 것 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순례자 동상과 사진을 찍어드릴까요?"하고 말을 걸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고, 그렇게 안면을 튼 뒤에는 곧 걸음을 맞춰 나란히 걷게 되었다. 삼촌뻘로 보이는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왔다며, 이름은 에드왈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걷는 동안 에드왈도 아저씨는 틈틈이 내게 말을 거셨다. 하지만 아저씨는 스페인어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고, 또 알맞은 단어를 찾아 답변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저씨는 번역 앱이 한글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시지 않았다. 때문에 정확한 내용의 대화를 주고 받기가 어려웠다. 나는 바디랭귀지와 몇 가지 스페인어 단어, 영어 단어를 활용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기도 힘든데, 아저씨와 걸음을 맞춰 스페인어까지 알아 들으려 노력하다 보니 문득 ‘헤어지고 다시 혼자 걸어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 동행이 즐거운 눈치였다. 나는 쉴만한 카페가 나오기 전까지만 이 동행을 이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인적이 드문 마을에 도착했다. 너무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행인도 보이지 않았고, 점심을 해결할 식당을 찾기도 어려웠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는 마을로 들어선 뒤부터 식당이나 바(bar)를 찾기 위해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 거렸는데, 그런 나를 잠자코 보던 아저씨가 말없이 앞장을 서셨다. 그리고 한 가게 앞에서 내게 오라며 손짓 하셨다.


아저씨가 서 계신 가게의 간판에는 ‘SOCIETY’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작은 가게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서니 한 낮에 와인과 맥주, 그리고 가변운 핀초스(pintxos)를 즐기는 동네 주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와 나는 가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핀초스 몇 가지를 골라 천천히 배를 채워나갔다. 어쩐지 그 순간 만큼은 여행객이 아니라 이 낯선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된 것 같았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동네 주민들만이 알 수 있을 법한 이 작은 가게를 찾아 마을 주민들의 일상 한 귀퉁이를 공유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아저씨와 대화하기가 어렵다며 투덜대던 마음이 금새 사라지고, 그저 이 만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는 혼자 되기를 고수하고, 누군가는 동행이 되어 함께 걷는 까미노. 나는 혼자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길 위의 만남들을 통해 내가 혼자가 되는 것 만큼이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혼자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인연을 기대하며 까미노를 걷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될 만큼 나는 자꾸만 ‘함께’의 좋은 점들을 배워가고 있었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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