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스위치 조절하기

#14 Puente La Reina ▶︎ Estella

by 박고래

푸엔테 데 라이나의 숙소에서는 여유를 부리다가 오전 8시가 더 넘은 시각에 나섰다.


먼저 숙소를 떠난 알리샤나 에드왈도 아저씨보다 10~15분 더 느린 시작이었다. 이 정도 시간 간격이면 제법 거리가 벌어지기도 해서 ‘오늘은 혼자 걷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베르게를 나설 무렵 먼저 떠났던 에드왈도 아저씨가 숙소에 두고 간 등산스틱을 가지러 돌아오셨기 때문에 아저씨와 나는 자연스럽게 함께 걷게 되었다.


그날 이후 에드왈도 아저씨는 쭉 나와 함께 걷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화장실에 들르거나, 띠엔다(tienda: 작은 상점)에 들러 간식을 사는 등 내가 필요한 행동을 할 때면, 아저씨는 가만히 나를 기다리시거나 함께 동행해 주셨다. 혼자 걸을 땐 너무 외로워 사람이 그리운데 함께 걸을 땐 되려 약간의 부자유를 느껴져서, 아저씨와 함께 걷는 동안 혼자 걸어야 할지 따로 걸어야 할지 자꾸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특히, 에드왈도 아저씨는 스페인어만 사용하시니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아저씨와 함께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동행이 꽤나 만족스럽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아저씨는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길 위의 고대 로마 유적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주려고 노력하셨고, 늘 호기심이 많은 나는 최선을 다해 귀 기울여 듣고자 노력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았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좋은 길동무가 되고 있었다.


‘나는 혼자가 좋았는데, 왜 또 동행을 만들어 함께 걷게 될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걷다보니 문득 엘리자베스가 내게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내가 내 '몸'을 돌보는 방식이 인상깊다고 말했었는데, 어쩌면 '관계'를 돌보는 방식도 다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 너는 네가 외부 온도에 예민한 것을 잘 알고, 걸을 때 쉽게 추위를 느끼거나 더위를 느낀다는 것도 잘 아는 것 같아. 그래서 보온을 위한 워머나 손수건 같은 악세서리를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두고, 재빨리 체온을 관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야. 나는 옷을 두껍게 입거나, 너무 얇게 입어서 어떤 날엔 땀을 뻘뻘 흘리고, 어떤 날엔 추위에 떨면서 걸어야 했거든. 특히 이렇게 날씨가 쉽게 변하는 곳에서는 온도 조절이 쉽지 않아.”


엘리자베스는 내가 나의 체온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관계 속에서도 민감하게 대처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고 사색적이기도 하지만 활달한 면모도 있고, 관계가 절실히 필요할 때도 있지만 혼자가 되는 시간도 중요한 그야말로 나는 복잡한 사람이었다.


한때는 내가 외향적 성격의 사람이라 생각하며 밝고 활달한 성향으로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믿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하나의 성향만을 고집하는 일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체온이 외부 환경에 의해 변화하듯이 관계에 대한 기준과 필요, 더불어 외향, 내향의 성향도 다양한 조건에 의해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양한 면모를 가진 나는 상황과 필요에 맞게 내면의 스위치를 잘 조절하며 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결론내며 아저씨와 또 하루의 일일 동행을 즐길 수 있었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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