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새로운 날들이다.

#12 Larrasoaña ▶︎ Cizur Menor

by 박고래

넷째 날의 여로에는 ‘팜플로냐(Pamplona)’라는 큰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다. 헤밍웨이가 머물며 글을 쓴 도시로 유명한 이 곳에서는 함께 걷던 친구들 대부분이 1박을 하며 관광을 하겠다고 했다. 헤밍웨이의 도시라니! 왠지 매력적이었지만, 나는 북적대는 인파에 휩싸이고 싶지 않아 금방 도시를 훑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잠시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카스티오 광장(Plaza del Castillo)에 앉아 한 낮의 햇볕을 쬐며 숨을 돌렸다.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카페 이루나(Cafe Iruna)가 바로 뒤에 있었지만, 너무 유명한 관광 스팟이 된 탓에 사람들로 가득 차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팜플로냐에 도착한 후엔 목적지가 달랐던 엘리자베스와 헤어졌고, 나의 다음 목적지인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까지는 오롯이 혼자 걸었다. 너른 길과 큰 나무들, 그리고 광활한 들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났다.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와 여유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을 맞았는데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음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부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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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계속 혼자 걷다 보니 또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나는 매일 걷는다. 따라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라고 나의 행위를 한 줄로 요약해버리면, 내가 매일 하는 행위는 똑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매일 다르고, 나는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에 매일 감탄하고, 또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다른 것을 느끼니 ‘매일이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게 아닐까?

생각해보면 서울에서의 일상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았다. 매일 일한다는 행위 자체는 같을 수 있지만 어제와 다른 풍경을 보고, 조금씩 다른 업무를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짐을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매일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겨났다. 그렇게 나는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 매일을 살았던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종종 ‘집-회사’ 또는 ‘집-학교’ 등의 반복되는 사이클에 지친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 반복이 참 지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는 것이 까미노를 걷는 일과 유사하다면, 나는 매일 다른 하루를 살아온 것이었다. 이 여행이 끝난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꼭 ‘매일이 새롭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마음 먹었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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