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참 어려운 숙제

#11 Roncesvalles ▶︎ Larrasoaña

by 박고래

론셀바이예스의 공립 알베르게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순례 둘째 날 아침 6시 30분쯤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레로가 우리를 깨웠다. 모두 8시 이전에는 알베르게를 떠나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날 나는 몇 가지 일을 겪으며 알리샤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아침을 오트밀로 해결하는 알리샤는 식당에서 조식을 사먹는 나와 함께 아침밥을 먹을 수 없었다. 처음엔 알리샤가 내가 아침 식사를 마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지만, 주방에서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그녀가 먼저 떠나기로 했다. 나는 예정된 약속 시간보다 15분쯤 늦게 아침 식사를 끝낼 수 있었고, 함께 조식을 먹은 다고 할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위에서 알리샤를 다시 만났다.


“Jin, I wanted to meet you agiain!”

"진 너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그녀는 나를 보며 그렇게 인사했지만, 다시 만난 뒤에도 함께 걷지는 않았다. 보폭이 비슷해 거의 나란히 걸으며 중간중간 대화를 나눴지만, 각자가 볼일을 볼 때 서로를 기다려주지는 않았다. 따라서 알리샤가 신발 끈을 묶거나, 내가 식료품점에 들러 간식을 구매할 때는 금방 우리 사이에 거리가 벌어졌다. 그러다 다시 거리가 따라 잡히면 자연스럽게 함께 걷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타인에게 맞추지 않고, 자신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까미노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곤 했다.


밤이 되어 숙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알리샤와 비슷한 속도로 걷고 있었고 우리는 같은 숙소에 들르게 되었다. 호스피탈레로와 숙박 조건을 체크한 뒤 내가 숙소 등록 의사를 밝힐 때였다. 갑자기 알리샤가 ‘다른 알베르게도 구경해보고 싶다.’며 자신의 가방을 다시 등에 짊어졌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나와 같은 숙소를 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녀가 다른 숙소를 찾아보겠다며 떠나자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어떤 상의의 말도 없이 다른 알베르게로 간다는 사실이 서운하게 느껴졌다.


물론 알리샤와 내가 ‘오늘은 같은 숙소에서 머물자.’고 약속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녀가 다른 숙소를 찾아 간 일이 잘못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며칠을 함께 걸으며 같은 숙소를 썼고, 동료처럼 움직였으니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많은 것을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알리샤와 내가 서로에 대해 기대했던 바가 달랐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 걷고 싶다면 ‘앞으로도 쭉 함께 걷지 않을래?’하고 물어 봤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설사 모른척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 밤 리랴소아냐(Larrasoaña)의 숙소에서는 미국에서 온 카를로스와 영국에서 온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열정적이고 수다스러운 카를로스와 당당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엘리자베스는 그날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걷게 되었다고 했는데, 꽤 죽이 잘 맞아 보였다. 둘의 권유로 나와, 알리샤는(그녀는 다른 알베르게를 돌아보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함께 식재료를 구매해 저녁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쾌활하고 넉살 좋은 청년인 카를로스는 요리사를 자청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조 역할을 맡았다. 손이 큰 카를로스가 음식을 꽤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알베르게에 있는 모든 사람을 초청해 함께 음식을 나눴다. 토마토 파스타, 그리고 참치와 올리브가 곁들여진 샐러드를 준비했고, 와인도 넉넉히 구매해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모두 둘러앉아 오랫동안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걷기 시작한지 겨우 3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까미노에서 생기는 기분 좋은 일들은 '타인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누군가의 마음', 그리고 '처음 만난 이들에게도 내 것을 넉넉히 베푸는 사람들' 덕분에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복잡하게 얽혀 사는 도시로부터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떠나온 까미노에서 결국 ‘사람’때문에 고민하는 나지만, 한편으로는 또 ‘사람’ 덕분에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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