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유 라이크 비노(Vino?)

#17 Los Arcos

by 박고래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의 숙소에서는 한국인 청년 K를 만났다. 길 위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이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함께 식사를 하자고 권했다. 그렇게 에드왈도 아저씨와 K,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다.


올라! 하고 시원스럽게 인사해주는 화통한 성격의 주인장이 있는 곳이었는데 아직 저녁 식사 메뉴를 주문하기엔 이른 시각이라 먼저 식전주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바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초리조가 얹어진 핀초스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잔, 두 잔… 따라 주는 와인을 맛보며 핀초스를 먹고 있자하니 바 주인장이 신이 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덩치가 작은 젊은 동양 여자애가 와인을 잘도 마시니 그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Do you like Vino?”

"너 와인 좋아하니?"


나는 받아 든 와인을 단숨에 들이키고 활기차게 대꾸했다.


“Of course! I really like vino as much as Korean alchols.”

"물론이죠! 한국의 술만큼 와인을 좋아해요!"


기분이 좋아진 에드왈도 아저씨와 K는 원 모어!(One more!) 을 외쳤고, 더욱 신이 난 기분파 주인장은 더 많은 레드 와인을 내 잔에 콸콸 따르고, 그러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그걸 꿀꺽꿀꺽 마셔댔다. 식전주 타임이 끝난 뒤에는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테이블 위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값싸고 질 좋은 와인이 다시 등장했다. 식전주로 제법 많은 와인을 마셨지만 분위기에 취한 나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나와 K, 그리고 아저씨는 꽤 오랜 시간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음식도 술도 푸짐했던 그날, 나는 결국 새벽 무렵 잠에서 깨어나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기 위해 화장실에 가야했다. 그날 밤 몇 번이나 토하고, 다음 날 아침엔 숙취에 시달리며 겨우 겨우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시끌벅적한 그 밤의 경험으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풍문으로 들은 대로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인의 '정'과 비슷한 정서를 가졌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여행지에서는 아무도 내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서로의 잔에 신나게 와인을 따라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주량을 조절하고 다음 날의 여행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은 내 몫이었으니 말이다.


함께 걷는 이들 모두가 서로를 걱정하고, 위험에 처하면 금세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순례길이지만, '스스로의 결정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은 사실 까미노 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평생 내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삶의 규칙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던 밤이었다.


책, <배움의 시간을 걷는다>의 일부입니다. 출간 전 사전 펀딩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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