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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책을 내고 싶은 걸까

안식처이자 도피처가 되기를

by 희너지


쳐다보아야 할 것은 노트북 화면 속
하얀 페이지가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두들릴 것은 키보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이었다.




올 한 해 동안 동기 작가님들과 여러 주제를 가지고 브런치북과 매거진을 함께 발행했다. 나이도, 직업도, 사는 지역도 모두 다르지만 엄마라는 단 두 글자로 단단히 묶인 우리. 일과 육아 사이에서 시간을 쪼개어 꾸준히 써냈고 그 결과로 쌓인 글만 50편이 넘는다. 이 많은 글들을 브런치에 두기엔 아까웠고,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글이 많다고 해서, 그저 굴비 엮듯 엮는다고 해서 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였지만 우리의 글은 오색찬란했다. 색은 물론이거니와 결도 다 달랐고, 질감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줄을 세워야 할지, 어떤 구조로 엮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글은 많이 쌓여있지만 방향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태. 우리는 이 난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1년 동안 함께 글을 썼지만, 사실 마음속까진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을. 글을 책이라는 물성 있는 결과물로 만들기 위해선 우린 서로를 알아야 했다. 책을 왜 내고 싶은지, 어떤 책을 내고 싶은지. 솔직한 마음을 터놓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곱씹고 곱씹을수록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같았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내 이름으로 낸 책 한 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꾸기만 했지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쓸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노트북을 켜고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얀 바탕에 커서만 깜빡인다. 어떻게든 써 내려가려 하는데 손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노트북 화면 속 하얀 페이지를 볼 것이 아니라, 내 속 마음을 들여다볼 때라는 것을. 키보드를 두드릴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먼저 두드려야 한다는 것을.





난 사실 마음이 평안하고 삶이 물 흐르듯 순탄할 때는 책이 잘 읽히진 않는다. 사는 것이 고되고 우울이 밀려올 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가까운 지인의 위로가 내 맘에 닿지 않을 때 주로 책을 찾았다. 그렇다. 난 책이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여자로서, 같은 엄마로서 하루를 버티고 있을 그녀들의 어깨를 조용히 토닥이는 책을 내고 싶다.'


결혼 전에는 몰랐다. 결혼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건들의 연속일 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사랑으로 생긴 아이를 낳는 일이, 나를 닮은 작고 소중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나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하다 못해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엄마가 되는 스텝에는 생각보다 많은 허들이 존재했고, 하나의 허들을 넘을 때마다 행복과 상처가 공존했다. 그 행복에 웃다가도 그 상처에 목놓아 울기도 했다.




얼마 전에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이라는 책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슬픔을 더 큰 슬픔으로 덮는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타인의 지지와 공감이 다른 어떤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는 말이었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그래서 나는 바라본다. 나의 책이 누군가의 안식처이자 도피처 같은 책이 되기를.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한 사람으로 살아가며 종종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수많은 순간을 통과할 그녀들에게, 편히 쉴 수 있는 작은 방 같은 책이 되기를. 기운이 빠지는 날 한 그릇 먹으면 힘이 나는 소울푸드처럼, 지친 하루 끝에 문득 떠오르는 나만의 맛집처럼. 그렇게 오래오래 그녀들의 곁을 맴도는 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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