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인데, 우린 할 말이 없다.

그는 그의 세계에, 나는 나의 세계에

by 희너지

평소와 다름없이,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친한 지인의 스토리를 눌렀다가 나의 시선이 한 장면에서 멈췄다. 지인은 오랜만에 남편과 데이트를 나간 모양이었다.


영화 보고, 늘 그렇듯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책 한 권씩 사들고 들어가는 길.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평생 친구가 있어서 너무 좋아.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고정한 채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 장면은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이었다. 부러움이 썰물처럼 차올랐다. 남편에게 함께 도서관을 가자고 말해볼까, 함께 책을 읽어보자고 말해볼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쳤다가, 곧 헛된 기대라는 생각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괜히 말했다가 마음만 다칠 것 같았다.


연애 6년, 결혼 13년. 함께한 시간만 따지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강산이 두 번은 바뀌었을 시간 동안 우리는 같은 이불을 덮고 살았지만, 닮아가진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색은 더 짙어졌다. 이제는 섞이려 해도 섞일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 이야기로 부부 사이를 메울 수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아이들의 일상이 대화의 중심이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 사이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점점 우리 손을 떠나기 시작하자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할 말은 줄어들었고, 그는 그의 세계로, 나는 나의 세계로 조금씩 더 깊이 빠져들었다.


부부의 간극이 멀어질수록 마음 한편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다름을 매일 확인하며 평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답해졌다. 취향을 공유할 수도 없고,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도 없는 관계에서 정말 ‘부모’라는 역할만으로 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저 아이의 아빠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답답함은 점점 커져갔다.


그날, 지인의 스토리를 보며 부러움을 넘어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던 건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베스트셀러 책이라 도서관에서 대출하기 어려웠던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는 중이었다. 책을 읽자마자 누군가와 책에 대해 나누고 싶어졌다. 작가는 왜 이런 문장을 썼을까, 주인공은 왜 그 순간 그런 선택을 했을까. 영화든 책이든 드라마든, 함께 보고 생각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갈증이 오래 쌓여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시간을 남편과 자연스럽게 나누는 지인의 모습을 보니 부러움을 넘어 답답함이 밀려왔고, 그 화살은 결국 남편을 향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함께 한 20년이라는 세월동안 헛된 기대는 닳고 닳아버렸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일부를 이해할 수 없었듯, 그 역시 함께해 줄 사람은 아니었다. 활자가 싫어 만화책조차 펼치지 않는 그에게 책은 애초에 먼 세계였고, 밖에서 자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남편 따라 캠핑을 다닐 리 또한 만무했다. 우리는 견우와 직녀처럼, 1년에 한 번쯤 유난히 죽이 맞고 1년에 한 번쯤 유난히 사이가 좋은 그런 부부였다.


이러한 결혼 생활이 맞는 걸까란 마음이 피어오르다가도, 오늘도 나는 ‘다들 이렇게 사는 거겠지’ 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함께 읽고 나눌 남편은 없지만, 한 지붕 아래 함께하는 남편이 있다는 것에. 그리고 아빠의 역할만큼은 묵묵히 잘 해내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에. 소소하게 자족해 본다. 결혼이란 어쩌면 꿈꾸는 장면 하나쯤은 포기하는 대신 현실을 붙잡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읽고 나눌 소울메이트는 다음 생에서는 꼭 만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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