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감기가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다. 기침으로 시작해 콧물, 가래까지 감기의 3단 콤보는 기본이요. 기력까지 빼앗아간 이번 감기는 링거를 맞으며 조금 나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력이 돌아오고 나니 목이 눈에 띄게 잠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 결국 목소리까지 잃었다.
아침에 눈 뜰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일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목이 답답하다 정도? 하지만 아이를 깨우려 이름을 부르자마자 알았다. 헉. 어떻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나오지 않는 목을 부여잡고 물을 마셔보고 아! 아! 소리쳐 봐도 돌아오는 것은 땅 속 깊은 초저음의 작은 목소리였다. 드라마 정년이 속 한 장면이 스치듯 떠올랐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자신의 목을 붙잡고 당황하다 끝내 울부짖던 정년이의 표정. 지금 내 표정이 딱 그 모습이었다. 간혹 칠판을 손톱으로 긁을 때 나는 찢어지는 소리가 나긴 했으나 여전히 바늘구멍만큼 작은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이런 나의 모습에 두 딸들은 토끼눈을 하고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제 말하지 마! 힘들어 보여.
대답하려는 나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말을 아끼라고 신신당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목소리를 잃어 말을 할 수 없게 된 그날부터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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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마다 일어나라고 10번은 소리 질러야 일어나던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준비물 확인이며 학교 갈 준비까지 아침마다 ~했니?~했어? 몇 분 남았어! 얼른 준비해!라는 말을 100번은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스스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교하면 가방정리도 바로 하고 샤워 후 옷 정리는 기본이요 시키지 않아도 숙제를 하는 것이 아닌가. 살다 이런 날이 오다니.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매번 식사 때가 되면 뭘 먹냐고 묻고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강했던 첫째가 차려준 대로 군말 않고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유식 할 때부터 입이 세상 까다로웠던 아이였는데.
아이들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의구심이 들던 아침, 밥을 먹으며 혼잣말로
엄마가 목소리가 안 나오니 화를 낼 수가 없네.
라고 말했다. 그 순간 스치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필요 이상의 화를 내고 있진 않았을까.
늦으면 안 된다는 나의 조바심에 너무 다그친 거 아닐까.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할 일들인데 성격 급한 엄마라 지켜보지 못한 거 아닐까.
아이고 어른이고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리는 없는데. 그저 내 눈엔 조금 부족해 보였을 뿐. 아이들은 늘 잘해오던 아이였겠다 싶었다. 나의 강박과 조바심에 안 해도 될 잔소리를 퍼부었고,성격 급한 경상도 엄마라 늘 빨리빨리를외치던 탓에 그저 내 눈엔 느려 보였던 것이었다.
아픈 것이 나쁘지만은 않네. 목소리를 잃어 말을 못 하게 된 것이 어쩌면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 급하고 잔소리쟁이 엄마보다 느리지만 묵묵히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아이들이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을 계기로 나의 마음이, 나의 그릇이 더 넓고 깊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