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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엄마 Dec 13. 2024

병 주고 약 주는 엄마

육아에 있어서 0순위는 부모의 말

제발 좀 정리 좀 해. 책상이 이게 뭐야. 여기가 무슨 쓰레기장이야?



둘째 아이의 책상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버리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손에 들어온 물건은 다 가지고 보는 아이. 책상은 물론이요. 책가방 안에도 쓰레기가 한가득. 본인에겐 하나하나 다 의미 있는 것이라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예쁜 쓰레기로 보일 뿐이다. 12월의 어느 날, 방문 선생님이 오시기 30분 전.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


엄마,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어. 책이 없어!


곧 수업이 시작되는데 필요한 책이 없단다. 다시 천천히 찾아보라고 이야기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아무리 찾아도 없다며 엄마를 목 터져라 찾는다.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물건이 뒤죽박죽 엉망진창 쌓아 두었으니 어느 누가와도 못 찾겠다.


제대로 찾아본 거 맞아? 으휴. 제발 정리 좀 해. 책상이 이게 뭐야.  여기가 무슨 쓰레기장이야? 엄마가 너 이렇게 막 쌓고 쑤셔박으라고 책상 사준 줄 알아? 서랍은 이게 도대체 뭐니. 제발 좀 비워. 제발.


다시 찾아보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될걸. 이 참에 잘됐다 싶어 속에 있던 말을 술술 내뱉었더니 아이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에서 멈출 줄 모른 체 2절, 3절 하염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캐캐 묵은 예전의 일까지. 태어날 때부터 정리의 ㅈ도 모르는 아이인 듯 아이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딱 거기까지.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by. pexels


아이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다 끄억끄억 서러움에 북받쳐 울부짖었다. 이쯤 되면 엄마 미워, 엄마 싫어라는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웬일로 울면서 정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본인에겐 너무 소중한데 버리라 해서 우는 건지, 아니면 엄마가 너무 몰아세워서 우는 건지 도통 알 수는 없지만 엄마인 나는 책상 바닥이 보이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아이는 휑해진 책상을 바라보며 허탈함에 망연자실한 얼굴이다.


방문 선생님이 오시고 아이는 수업을 하러 방에 들어갔다. 다행히 좀 전의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씩씩하게 대답하고 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니 문내 미안함이 밀려온다. 내가 너무했나? 그래도 책상은 정말 엉망진창이었어. 내 안의 두 자아가 번갈아가며 나를 갈등 짓게 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사과를 할까? 아니면 그냥 모른척할까? 짧은 시간이지만 갈팡질팡하느라 머리가 바빠졌다.


수업을 마치고 거실로 나온 아이. 거실 가득 어색함의 정적이 흐른다. 난 바위보다 굳은 얼굴로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곁눈질로 아이를 스캔하느라 바쁘다. 한껏 기죽은 아이의 얼굴을 보자니 필요 이상의 화를 낸 것 같아 먼저 말을 건넨다.


너 아까 왜 울었어? 엄마가 너 아끼는 거 다 버리라고 해서 운 거야?

(개미똥꾸멍만 한 목소리로) 엄마가 나한테 엄청 화냈잖아.. 그래서 운 거지.


물건을 버리라는 것보다 화낸 것에서 터졌다니. 순간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쓰레기통에 넣은 예쁜 쓰레기들을 다시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


(입에 침 좀 바르고) 엄마야 당연 네가 정리하면 잘하는 거 너무 잘 알지. 그렇지만 오늘 책상 상태는 너무 심했어. 그리고 당장 수업해야 하는데 책 없다고 동동거리니 엄마도 너무 당황했어. 화내서 미안해. 그래도 다음부터는 자주 정리 좀 하자. 응?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나에게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을 내어주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얼굴을 보자니 미안한 마음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오늘도 나는 병 주고 약 주는 세상 못난 엄마가 되었다. 


by. pexels


사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교육 관련 영상을 보다 불현듯 정리로 혼냈던 이 날이 떠올랐다. 유튜버가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입으로 들어간 것은 똥구멍으로 나오지만, 귀로 들어간 것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를 향해 뱉었던 말들은 아이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물을 쏟으면 닦으라고 하면 될 일을 부모는 너는 왜 이렇게 덤벙대니. 왜 이렇게 부주의하니.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니 등등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이 말로 인해 아이들은 나는 덤벙대는 아이. 조심성이 없는 아이로 가랑비에 옷 젖듯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다시 찾아봐!" 이렇게만 이야기했으면 되었을 것을 나는 아이에게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준 것이었다. 육아에 있어서 엄마표, 책육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0순위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말이었다. 여태 내가 뱉었던 아이를 향한 비난의 말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병 주고 약 주는 엄마에서 꼬리표까지 붙이는 엄마였던 것이다. 


그날 퇴근길에 문구점에 들러 포스트잇을 샀다. 꼬리표까지 붙이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저 문구를 싱크대며 냉장고며 노트북까지 적어 붙여놓았다. 이제는 아이를 향한 비난의 말은 멈추기 위해. 혼낼 때는 그 순간의 잘못된 행동만 꼬집기 위해. 병 주고 약 주는 엄마 말고 짧고 굵게 한 마디만 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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