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필작가 Jul 11. 2021

영어로 길을 찾다

Bravo, my life!(13)

대필작가의 말

- 이번부터는 한국전쟁 이후 이야기입니다. 부대에서 영어 공부를 어떻게 시작했고 그 방면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쌓게 되었는지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와요. 자기소개에도 썼지만 저희 할아버지는 영어 덕후(!) 이신데요. 할아버지 방 책꽂이에 가득한 손때 묻은 영어책과 늘상 흘러나오던 CNN 뉴스는 어릴 때부터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꾸준히 뭔가를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잠잠하시지만, 예전에는 운동을 나가셨다가 외국인을 만나면 무작정 가서 말을 걸면서 회화 연습을 하기도 하셨대요. 할아버지 댁 주변에 외국인들이 좀 많거든요. 그야말로 살아있는 영어 공부의 장이었던 셈이지요. 아무튼, 알고 보니 그 외국인이 한국에 경기 차 방문한 꽤 유명한 운동선수여서 VIP 초대권을 받아 다녀오셨던 일도 있으니 대단하시죠? 빨리 코로나가 끝나서 할아버지가 다시 회화 연습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꼭 미국에도 다시 모시고 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1953년 9월 전 육군에 있는 상, 중사(당시 2등 상사) 일제고사가 있었다. 강원도 원주의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험을 보았다. 11월 육군 본부에서 우리 육군 제일의무보급중대로 회보가 내려왔다. 합격자 명단이었다. 육군 소위를 원하면 육군 소위로 임관시키고 준위를 원하면 준위로 입관시킬 예정이니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소위 임관보다는 준위 생활을 좀 더 하다가 사회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준위를 희망했다. 재정과에 있던 최 상사는 소위를 지망했다.


 12월 21일 자 회보가 내려왔는데 최 상사는 54년 1월 1일부로 보병학교 입교하고 나는 준위로 임관시키라는 특명이었다. 11일 간 상사 계급장을 떼고 부대 근무를 하다가 중대 연병장에서 중대원 전원을 집합시켜 김용태 중령님이 준위 계급장을 달아주는 임관식을 거행했다. 임관 후 10일간은 중대 영선관으로 일했고 1월 10일 부로 경기도 전곡에 있는 제5의무치료중대의 제2소대 보좌관으로 보직되었다. 4월에는 판문점 포로 교환하는데 의무대로 파견되었다가 약 20일 후에 중대로 돌아와 가평에 있는 제5의무치료중대 13소대 소대 보좌관으로 있었고 1954년 9월에 전곡으로 원대 복귀 후 식사관으로 있었다.      


 1955년 5월 경 육본에서 회보가 내려왔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장교는 제1군 사령부에 신설되는 백승공민학교를 필히 수료해야만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입교 신청을 했다. 교관은 6명이었고 학교장은 1군사령부 정훈 국장이었다. 학생은 30여 명으로 대위가 한 명 있었고 중위, 소위 그리고 준위가 몇 명 있었다. 소위 중에 박이란 분은 고등학교를 다녔는지만 일이 있어서 졸업장을 못 받았다고 했다. 입학 당시 소양시험이 있었는데 내가 제일 높은 성적을 받았다. 당시 교관들 사이에서 졸업할 때는 누가 1등 할 것 같으냐는 말이 나와 수학 교관인 김 중위님은 박 소위를, 영어 교관인 강 중위님은 나를 지목하며 두 분이 내기까지 거셨다고 했다.


 강 중위님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시고 서산 농업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시다가 입대 후 통역관 시험을 보아 군 사령부 통역으로 계신 실력자였다. 특히 내게 공부 방법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16주라는 짧은 기간에 모든 학과를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수학이면 수학 영어면 영어 딱 한 가지만 하면 그 과목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실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내가 영어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당장 자신의 하숙집에서 과외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부터 영문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강 중위님은 영어 문법을 외고 계시다가 저녁에 가면 노트에 적으라고 하시면서 불러 적어 주셨다.

     

 16주가 지나고 나는 학교를 2등으로 졸업했다.  중위님이 수학 과외를 시켰던  소위가 1등을 했다.  중위님께 면목이 없었지만, 나는 시험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길렀노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졸업식이 끝나 헤어질   중위님이 ‘ 준위께서는 앞으로 3개월만  AFKN 청취하시면 영어를 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이라고 하셨다. 나는 3개월이 아니라 3년이 걸려도 해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영어를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나의 특기이자 무기로 삼아보기로  것이다.

이전 12화 근무지에서 생긴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