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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Oct 19. 2021

근무지에서 생긴 일

Bravo, my life!(22)

 대필작가의 말


이번 이야기는 근무지에서의 일화들입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군대에서 보내신만큼 이사도 많이 다니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가족 여행을 가면 어디를 가든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지곤 합니다. 살림집이 있던 골목, 아빠와 고모들이 다니던 학교 등을 직접 방문해 보기도 해요. 대부분 모습이 많이 변했거나 자취조차 찾아볼  없지만 할아버지 눈에는 아직도 그때  시절의 추억들이 생생히 떠오르시는 모양이에요.  어제일 이야기하듯 술술 말씀하시는  보면요. 이번에 모든 얘기들을  옮겨 담지는 못했지만 지역별로 정리를  봐도 흥미로울  같습니다.


덧붙이자면, 저희 할아버지가 얼마  넘어지셔서 조금 다치셨어요. 그래서 여쭤보려고 벼르던 이야기는 약간 미루게 되었습니다. 그때  가던 분들이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약까지 사서 발라 드렸다던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모두 건강 조심하세요!

 




 1. 

춘천 보급중대 보급과에서 일등상사로 선임 하사관을 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노인과 12살 난 손녀가 사는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다가 누가 면회 왔다는 전갈을 받고 나가보니 주인 할머니였다. 자기가 잘 아는 아주머니가 시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갑자기 토사곽란을 일으켜 다 죽어가니 좀 봐 달라는 것이었다. 가보니 아주머니 얼굴이 창백해져 거의 실신 상태였다. 부대에서 약을 갖다 치료를 했더니 약 10분 정도 있다가 얼굴이 벌게지고 숨도 제대로 쉬었다. 곧 죽겠다던 이가 자전거를 타고 온 남편을 따라 집까지 걸어갔을 정도였다. 수일 후 아주머니가 고맙다면서 맷돌에 갈았다는 밀가루를 가지고 왔다. 형편도 어려우신데 나으셨으니 됐다고 하며 그냥 돌려보냈다.      


 당시는 병원이 드물 때라 병이 나면 애를 먹었다. 위생병으로 있던 사람이 무면허로 약방을 운영하던 일도 다반사였고 의무대에서 외상 환자 치료나 약을 조제해주기도 했다. 급한 환자에게는 주사도 놓아주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군에서도 군의관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위생병이 환자를 많이 치료했다. 나는 의정 장교이자 의무과장 대리로 근무하면서 중환자가 있으면 군의관에게 보이고 위급한 경우 즉시 육군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나 역시 간단한 처치는 직접 했고 틈틈이 약국방 같은 서적을 구해 공부했다.



 2. 

부대 천막 벽을 쌓는 흙벽돌을 만들기 위해 남방리라는 곳으로 파견을 나갔다. 작업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방을 얻어서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점심 무렵 지나 집사람이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집에 큰 구렁이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가보니 우리가 들어 사는 방 밖 추녀에 길이가 최소 1m 50cm가량 되는 큰 구렁이가 매달려 쩍쩍 소리를 내며 가고 있었다. 가는 회초리로 머리를 힘껏 쳤더니 쩍 하면서 땅에 떨어졌는데 동네 애들이 보고 있다가 막대기로 때려서 금방 죽였다. 애들이 구렁이를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아서 깜짝 놀랐다. 구렁이 눈이 무서워서 얼른 산에 가지고 가 묻어 버렸는데, 돌아오니 집주인 아주머니가 자기네 터주 구렁이를 죽였다고 투덜댔다. 할 말이 없어서 난처했는데 주인어른이 쥐 잡아먹으려던 들 구렁이지 무슨 놈의 터 구렁이냐고 해주어 난감한 입장을 면한 일이 있었다.      



 3. 

홍천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밤이었다. 자고 있는데 집사람이 누가 찾아왔다고 깨웠다. 근처에 사는 아주머니가 지금 집 영감이 갑자기 아프니 좀 와서 봐달라고 했다. 가보니 얼굴이 창백하고 팔목을 잡았더니 맥이 뛰는 것 같지도 않게 약했다. 아주머니 말과 증상을 종합해 보니 급체한 것이 틀림없었다. 부대에서 약을 얻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나왔는데 동네 개울이 불어 돌다리가 잠겨 있었다. 할 수 없이 옷을 입은 채로 뛰어들어 수영하듯 건넜다. 부대 약제과에서 약을 얻어와 치료를 했다. 10분가량 있으니까 얼굴에 화색이 돌고 팔을 쥐었더니 맥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옆에서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며칠 뒤 편찮으셨던 영감이 관솔을 쪼개 불쏘시개 하라고 가지고 왔다. 덕분에 나았다고 답례를 한 건데 굳이 산까지 다녀온 정성에 감사히 받았다. 영감은 이후에도 가끔 들렀다. 나는 영감이 오면 따뜻한 아랫목에 앉으시라고 손으로 방바닥을 툭툭 치곤 했는데, 갓 돌 지난 아들이 언젠가부터 나 대신 영감 바짓가랑이를 잡고 바닥을 손으로 톡톡 치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영감은 흐뭇한 표정으로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영감뿐만 아니라 그 집 딸내미들도 우리 아들을 아껴 주었다. 큰 딸은 시집을 갔고 둘째가 막내에게 매일 밤을 한 톨씩 구워 먹였는데, 그때마다 구운 밤을 갖고 와서 우리 아들에게도 먹이고 가는 것을 보았다. 동네 꼬마 두 놈이 양볼에 살이 쪄서 볼록하니 있는 모습이 아주 예뻤다. 영감과 동네 누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그 애가 벌써 환갑이 넘은 것을 보면 세월이 너무 빨리 가누나 하는 생각이 든다.



 4. 

홍천 주인집에 벌통이 하나 있기에 꿀을 따시거든 좀 사겠다고 했다. 늦가을 어느 날 꿀이라고 세 병을 가지고 오기에 사서 한 병은 집에 걸어 놓고 두 병은 서울 간 김에 두 처남에게 드렸는데 대번 이거 가짜 꿀이라고 하셨다. 홍천으로 돌아와서 대놓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찜찜하니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놀러 왔다가 달아맨 병을 보더니 또 가짜 꿀이라고 했다. 영 기분이 안 좋았다. 매일 얼굴 보는 사이인데 세 병씩이나 속여 팔다니! 그러고 보니 벌을 한 통밖에 안 치는데 그렇게 많은 꿀을 딸 수 없다는 것과 주인집이 평소 우리 집 참기름을 몰래 따라가는 등 버릇이 좋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이후에도 주인 여자가 남의 술병을 훔치다가 들키거나 큰딸이 남의 뜰 안에 묻어놓은 밤을 파갔다 들키는 등의 사건이 일어났고 동네 사람들도 그 집 사람들은 도적질밖에 모른다고 수군댔다. 아무리 집이 편하고 신식이어도 성정이 나쁜 이들과 한 지붕 아래 지내는데 좋을 리가 있을까. 우리도 곧 딴 집으로 이사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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