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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May 04. 2021

녹록지 않던, 1950년 군대

Bravo, my life!(8)

 어느 날, 소위 한 분이 와서 ‘너희들은 나를 따라 중앙지구 전투부대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 포함 6명이었다. 난생처음 군대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가량 밤길을 달렸다.      


 “여기는 전투지구다. 여기서 잘못하면 나도 죽고 남도 죽일 수 있는 곳이니까 항상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 누구라도 잘못하면 총살시킨다. 모두가 주의해서 한 사람도 희생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란다.”      


 소위는 단단히 주의를 준 뒤 우리를 데리고 내무반에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가자 먼저 있던 선임병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지금까지 신병이 없어서 자기들이 모든 것을 해왔는데 드디어 쫄병이 생긴 것이었다. 

     

 아침이 되자 배식을 했다. 전쟁터인데도 국, 김치 같은 것이 괜찮았다. 우리들을 인솔해 온 장교는 2대대 의무지대장 육군 소위 조은상 씨로 육사 8기생인 의무장교였다. 소위 임관하기 전에 상사였다고 했다. 훌륭한 분이었다. 식사 후에는 선임하사관인 이덕우 중사께 국군 맹서와 불침번 수칙을 배웠다. 당시 이병하 일병이 국군 맹서를 못 외우자 선임하사님이 나와 비교하며 혼을 냈는데, 이 일병은 자존심이 상했던지 이후 나를 은근히 괴롭혔다. 저녁에 할 일이 있으면 일부러 나를 불러서 시키는 식이었다. 가장 고역은 전사자 안치소 앞에서 서는 야간 보초였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에 홀로 서 있자니 송장이 움직이며 다가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도랑에 들어가 있다가 교대자가 오는 게 보이면 올라가 교대하곤 했다.

          

 어느 밤에는 자고 있는데 또 이병하 일병이 와서 발로 툭툭 차 깨웠다. 지금 고지에 환자가 있으니 들것을 가지고 올라가서 운반해 오라는 것이었다. 그냥 가서 데려오면 되는 줄 알고 황명수하고 고성 사는 동기하고 셋이 나갔다. 어둠 속을 이백 미터쯤 걸어가자 갑자기 “암호” 했다.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더니 갑자기 상대가 땅땅 총을 쏘아댔다. 혼비백산 도망치다 납작 엎드려 있자니 어슴푸레 동이 트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북기가 펄럭이는 것이 필경 잘못 올라온 모양이었다. 황명수에게 신호를 하자 그도 알아채서 둘이 뛰어 내려갔다. 인민군이 졸다가 깼는지 그제야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급한 맘에 눈앞에 보이는 물구덩이로 덤벙 뛰어들었다. 발이 바닥에 겨우 닿을락 말락 하고 물이 목까지 차올랐으나 도리가 없었다. 언덕 밑에 인민군 두 놈이 바짝 엎드려서 총을 쏘는데 총알이 눈앞까지 날아와 철벅철벅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 있다 총소리가 멈추기에 가까스로 기어 나와 마침 부대로 가던 차를 잡아 타고 돌아갔다. 


 군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총을 맞아 죽거나 인민군에게 잡혀갈 뻔한 때도 많았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간발의 차로 살아남거나 조력자들을 만났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그 행운들이 우리 어머니의 치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 들어가 서너 달쯤 되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니 어머니가 자꾸 보고 싶어졌다. 궁리해 보니 시계가 필요하다면 어머니가 시계를 사 가지고 올 것 같았다. 당장 편지를 써서 부쳤다. 

      

 “어머니, 보초 서는데 시계가 필요하니 하나만 사다 주세요.”      


 그랬더니 한 일주일 만에 어머니가 1800원 주고 산 시계와 떡을 해서 이고 오셨다. 눈물이 왈칵 났다. 고병들이 보자고 해서 줬더니 괜히 뚜껑을 열고 보다가 시계가 서버리고 말았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알까봐 감추고 있다가 읍내 가는 연락병 편에 고쳐 봤는데도 자꾸 고장이 났다. 마침 누가 고장 난 시계라도 사겠다기에 팔고 어머니 선물이나 사 드릴까 했는데, 김복만 하사가 급전을 꾸어달라 해서 할 수 없이 빌려주었다. 이후 우리 부대가 서울로 이동하게 되면서 돈을 돌려받을 길이 요원해졌다.

      

 서울로 온 뒤 1950년 4월 1일 부로 하사가 되어 집에 10일 간 휴가를 다녀왔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돈 넣었는데 받았냐고 하셨다. 그전에 돈이 필요하다고 편지를 했었는데 내가 휴가 나온 사이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당시 제법 거금인 만 원이었다. 귀대해서 알아봤더니 인사계 이윤식 상사가 자기가 찾아 썼다며 다음 봉급 타면 주겠다고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렇게 돈 달란 소리도 못하고 있다가 두 달 뒤 6·25가 나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화번호부를 보니 이윤식이 여러 명이라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혹시 찾는다 해도 받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졸지에 두 사람에게 돈을 떼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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