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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May 18. 2021

군에서 만난 양상군자(梁上君子)

 Bravo, my life(9)


1.

 1952년 제1의무 야전 창고의 선임 하사관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군인 하나가 자기 시계가 없어졌다고 했다. 군인들을 한 사람씩 사무실에 불러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아무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배치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들쑤시기가 그래서 난감하던 차에 시계 주인이 ‘찾기 어려워 보이니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겠다'라고 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불러다가 따지는 게 편치 않았기에 내심 고마웠다.     

 

 하지만 의심 가는 인물은 있었으니, 최근 일어났던 피뢰침 도난사건의 범인이었다. 얼마 전 식사를 하고 무심코 앞 건물을 봤는데 피뢰침 꼭대기가 없었다. 군인들을 집합시켜 피뢰침 꼭대기 어디 갔냐고 했더니 한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내가 빼가지고 금방에 가서 물어봤더니 백금이 아니라고 해서 도랑에 버렸다’고 했다. 가서 찾아오라 하니 금방 가지고 왔기에 죄를 묻지 않고 그걸로 사건을 매듭지었더랬다. 그 녀석을 불러 정말 안 훔쳤냐고 했더니 ‘선임 하사님, 저를 그렇게 못 믿겠습니까?’하고 몹시 억울해했다. 손버릇은 나빠도 거짓말은 않겠지 싶어 특별히 못 믿는 게 아니라고 얼버무렸다.     


 몇 달 뒤, 특별한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누군가 극장 갈 사람을 모았다. 서로 돈이 없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내 보이는데 갑자기 시계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피뢰침 도난사건의 범인 녀석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빼는데, 무심코 그 안에 있던 시계를 집은 채였던 것이었다. 시계 주인이 ‘시계 찾았다!’고 낚아채는데, 도둑질이야 나쁘지만 상황이 어찌나 우습던지 다들 낄낄거리며 웃었다. 녀석은 지딴에 퍽이나 창피했던지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날, 저녁식사 후 내무반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급히 들어가 보니 녀석이 엎드려 피를 쏟고 있었다. 짐작컨대 죽으려고 총을 쐈다 빗나간 것 같았다. 즉시 수도 육군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녀석이 들것에 실려나가는 동안 다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는데 갑자기 그가 눈을 번쩍 뜨더니 시계 주인을 보고 바락바락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깟 시계가 뭔데! 그까짓 시계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어?"


 적반하장도 그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오후에 그 녀석을 비웃고 욕했던 사람들은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었고 나 또한 일말의 측은함을 거둘 수 있었다. 원래 성품이 좋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듣자 하니 녀석은 수도 육군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3개월 후에 상이 제대를 했다고 한다.



2.

 제6의무대대 수송관으로 근무 중일 때에 있었던 일을 적어볼까 한다. 1960년 봄, 군병들이 라디에이터에 부동액 넣는 것을 보고 있는데 CID(Criminal Investigation Department, 수사과)에 있는 김 중사와 이 상사가 와서 잠시 보자고 했다. 기분은 좀 께름칙하지만 뭔 일이 있겠나 하고 따라 들어갔다.

      

“안 준위님 딴 게 아니고... 아시겠지만, 앰프를 돌려주십사 합니다."     

 

 뜬금없는 소리였다. 무슨 앰프냐고 했더니 가져가신 앰프 말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미 나를 범인으로 특정한 모양새였다. 화가 났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어쩌다 내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냐고 따졌다. 들어보니 참 기가 막혔다. 앰프가 없어진 보급과에 가서 근래 여기 왔던 사람이 없냐고 물었더니 안 준위가 왔다 갔다고 했고, 주인집에 가서 앞방에 사는 군인(나)이 근래에 통 같은 것 가져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큰 상자를 가져왔다고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네 점쟁이한테 가서 수송관과 등록관 두 명의 안 준위 중 누가 도둑이냐 물었더니 수송관 안 준위라고 했다는 것이다.

     

 점쟁이 말이야 그렇다 쳐도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졌다. 우선 내가 보급과에 갔다 온 것은 맞다. 애가 요새 엄마한테 건빵 사달라고 조른다기에 부대에서 타다 주마하고 갔던 것이다. 당시 보급계 담당이던 김 하사가 없길래 하염없이 기다리다 내무반으로 가 보니 화투를 치고 있기에 되게 혼내 주었다(그 때문에 내 이름을 일부러 들먹인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주인집이 본 상자는 하필 최근에 들여놓은 이불장이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그 무당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더니 김 중사와 이 상사가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했다.


 나야 그리 험한 꼴을 당하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엄한 사람을 도둑으로 모는 것은 문제였다. 대대장실로 가서 수사관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해도 되냐고 따졌다. 대대장은 부대를 위해서 일하다 그랬으니 이해해 달라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안 준위가 진범을 잡아 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렇잖아도 어떤 놈이 도둑질을 한 건지 궁금하던 차였다. 나는 내 손으로 반드시 범인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저녁부터 보급과 군인들을 불러다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살살 어르다 혼내다 하니 그동안 빼돌렸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오기 시작했다. 이불, 모기장부터 쌀과 기름, 건빵과 담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건물 앞에 쌓아 놓은 것만 수십만 원어치가 되었다. 4월에 부대가 해산되기 전에 새 물건들을 팔고 헌 것을 사다 두려던 것이다. 걸린 놈들이 말을 우물거리는 것을 보니 높은 놈들도 끼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번 일이 해결 안 되면 너희들 큰 벌을 받을 테니 빨리 털어놓는 게 상책이라고 달랬다. 한 놈이 자기네 선임인 최 상사가 밤에 들어왔다가 뭔가 들고 나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최 상사를 조사하면 나온다는 확신이 섰다. 그물망이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그 날 저녁 내무반쪽을 지나가는데 아이고 나 죽네 하는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 나왔다. 슬쩍 들여다보니 최 상사가 자긴 이제 죽었다며 뒹굴고 있었다. 우리가 보급과 군인들을 취조하는 소리를 최 상사의 부인이 듣고 전달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군인들을 조사하다가 밖으로 잠깐 나갔는데 최 상사 부인이 당황한 듯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튼 최 상사는 범행을 시인했고 그 일에 연루된 다른 보급과 군인들과 함께 물건값을 모두 변상하게 되었다. 나는 사건 이후 보급관에 임명되어 3개월 간 보직을 수행했다.


 당시에는 넉넉한 사람이 드물었다. 아니, 넉넉하기는 커녕 살림이 팍팍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량한 이들은 주어진  안에서 검소하게 생활할  알았다. 그렇기에 알뜰하게 물품을 관리하고 많은 군인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했을  상사와 보급군인들의 집단 범행은 더욱 용서받을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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