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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

by 자급자족


출제를 했다. 토요일에 어두컴컴한 스터디카페 붙박이라니. 특정 야에서 높은 직급 얻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시험 문제 출제다. 의뢰기관 담당자는 대단한 스킬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거절할 수 없는 타이밍에 부탁한다. 휴일 전날 퇴근 무렵, 메일 전송. 매년 같은 타이밍의 패턴이었음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원하지 않는 일을 무방비로 받았을 때에는 최대한 빨리 털어야 한다. 지극히 T로 임해야 한다. 잘해보겠다고 오래 쥐고 있어서도 안된다.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작업하여 이메일 전송하고 수집된 쓰레기는 즉시 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 삶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도 안내하지 않았지만, 나름의 출제에 임하는 포인트를 잡아보았다.


1. 출제하는 동안 내가 행복할 것

2. 지문은 내게도 흥미로운 주제일 것

3. 지문의 원저자는 권위 있는 사람일 것

4. 원자료의 발행기관은 신뢰로운 기관일 것

5. 자료가 지방 향토자료 기관 사보 수준이 아닐 것

6. 지문은 사회나 정책이슈를 담고 있을 것

7.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내 문제가 최종 선정될 수밖에 없게 만들 것

8. 쉽게 내지만 확실한 변별력이 있을 것

9.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도 가치 있는 내용일 것

10. 궁극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위한 이슈일 것

11. 재차 점검을 통해 오류를 0으로 만들 것

12. 추후 논란에 대처하기 위해 정확한 근거를 들어 해설서를 작성할 것

13. 이해, 표현, 추론, 논리성 등을 골고루 평가할 수 있는 문제를 낼 것

14. 발행 1년 안의 최신 자료일 것

15. 한쪽으로 치우친 정치 글이나 에세이는 피할 것



자료는 정기간행물과 신문 기고문을 먼저 훑어보았다. 정기간행물은 공공도서관을 이용했고, 신문은 국내 모든 문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는 한 재단의 제공 아이디를 활용했다

퇴근하고 리가 잘되어 있는 두 곳의 정기간행물실 방문했다. 사서분들께서 과월호도 잘 정리해 두었다. 퇴근 후라 정기간행물 이용 가능 시간이 1시간밖에 안되었다. 빠르게 료를 브라우징 하며 사진으로 저장작업 했다.


2010년도부터 작년까지의 기출문제 패턴을 분석하고 예상문제를 출제했다. 다 출제하고 나서 정독에 정독을 거듭했다. 원저자의 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문의 길이 등을 시험 특성에 맞 조정했다.


귀가하여 초등 6학년 딸과 중학생 아들에게 한번 풀어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매년 엄마표 문제를 푼다. 이러다 내가 수능문제 패턴도 분석하려 들겠다. 수능문제와 흡사한 B4 문제지를 받아 들고 아이들이 초집중해서 푼다. 딸은 코. 카. 콜. 라로 찍었는데 다 틀렸고, 아들은 제법 정답 맞혔다.


요즘은 숨만 쉬고 있어도 죄스러운 나날이다. 일상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진다.


내년에 은 직급 얻으시는 분들~


부디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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