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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계란반숙 싫어하잖아.

by 자급자족

남편은 요즘 냉장고 털기 중이다. 일명 '냉털음식'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가족 여행을 계획 중이라 냉장고를 아예 털어먹고 가려나보다. 매 겨울마다 냉장고를 털고 제로부터 시작한다.


시어머님께서 싸주신 김장김치 양념이 남아있었다. 남편이 준비한 오늘의 냉털 음식은 김장김치 양념으로 만든 '김치볶음 덮밥'이다. 옆에서 보니 김장김치 양념, 설탕, 참치, 멸치액젓으로 맛을 내는 것 같았다. 밥 위에 덮밥 양념과 계란 프라이를 곁들여 식탁 위에 올다.

애들 밥 위에는 달걀 프라이 반숙이 예쁘게 올려져 있는데 내 것에만 없었다. 갸우뚱했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너 계란 반숙 싫어하잖아.


그러면서 계란 뒤집개로 꾹꾹 눌러 노른자를 익히고 있다. 는 계란반숙을 정말 싫어한다. 비릿한 맛을 참을 수 없다. 어렸을 때 경험한 썩은 날계란의 맛 때문이다. 아빠는 닭장에서 따뜻한 계란을 꺼내 젓가락으로 끝을 톡톡 깨서 호로록~마시곤 했다. 날계란을 호로록 마시면서 고소하다고도 하셨다.


나도 호기심에 아빠를 따라 똑같이 시도한 적이 있다. 고작 10살쯤이었을 거다. 내가 선택한 계란을 호로록~했을 때에는 검은 물이 내 입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병아리가 되다 못해 상해 있던 달걀이었다. 맛이 너무도 강렬해 이후 익지 않은 비릿한 반숙계란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남편이 내 프라이는 꾹꾹 누르며 노른자를 익히고 있었던 거다.



남편은 말수가 없지만, 배려심을 가지고 있다. 시댁에서 식사할 때면 밥상 위의 멀리 있는 고등어구이의 가시를 발라서 조용히 내 밥 위에 올려놓는다. 지난 금요일에는 아파트 야시장에서 본인의 순대를 사면서 찐 옥수수도 덤으로 사서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겨울에 웬 옥수수냐고 물으니, TV 뉴스에 눈을 고정한 채 한마디 던진다.


너 옥수수 좋아하잖아.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도 같이 사는 이유이고, 같이 살 이유다.


너 반숙 싫어하잖아.

너 옥수수 좋아하잖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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